KARL 창립 60주년 기념특집 KARL지의 미스테리

다음 챠트의 왼쪽은 HM1AJ가 1955년에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의 창립위원중의 한사람으로 참가한 이래, 1973년에 전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할 때 까지의 18년 반 중에서, 부산의 금성사에 근무한 3년 반을 제외한 15년동안, 연맹을 위하여 공헌한 일들중 중요한 몇가지만 표시한 것이고, 오른 쪽은 그중 한국에서, 드디어 아마추어무선이 개방되든 시기를 전후하여 1958년 - 1960년의 3년 동안 일어난 일들을 알기 쉽게 확대 표시한것입니다. 이 데이터는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의 기관지인 "KARL지"의 60주년 기념특집호에 기재되어 있는 데이터들을 기초로 작성된것입니다. 여기에 나타난것 처럼, HM1AJ는 연맹 이사로 창립 첫해와 부산에 있든 2년을 제외 하고는, 매년 이사 11년, 부이사장 2년, 3대 이사장 3년등 계속 연맹의 임원으로 선출되어 활약하였고, 그간 아마추어무선의 개방 추진이 주업무였든 총무이사 (가장 중요했든 아마추어무선이 개방되든 시기에 6년), 그리고 아마추어무선의 홍보활동이 목적이었든 KARL지의 편집 발행 (편집 담당 누계 5년간에 39권 발행으로, 누구보다도 장기간 편집 및 발행을 담당하였음), 그리고 아마추어무선의 홍보를 위한 단행본 3권 발행 (아래에 소개되어 있는 "HAM RADIO GUIDE BOOK", "HAM RADIO POCKET DATA = HM Call Book" 그리고 많은 인기로 3판 까지 발행한 "우정의 전파")등 한국 아마추어무선의 조기 개방과 초기 연맹의 기초확립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경주 하였고, 기여한바도 큽니다. (상세한 내용은 그 아래에 있는 "AJ의 KARL이야기" 그리고 ""4287년 부터 4292년 까지"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와같이 KARL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KARL의 발전과 한국 아마추어무선 발전에 공헌이 막대한 HM1AJ가, KARL 창립 60주년 기념특집 KARL지에는 연맹일을 했다는 문구 조차 한마디도 없이, 마치 연맹일과는 전혀 무관했든듯이 기재되어 있읍니다. 그것도 한두군데가 그렇다면 실수로 볼수도 있겠지만, 전권에 걸처 그런것으로 보아 고이적인 것 만은 틀림이 없는것 같고,  이 특별호를 편집한 유부원은 KARL초기에는 ham이 아니었으므로 그때의 사정을 전혀 몰르면 몰랐지 잘못 알았을 이도 없고, 내가 KARL지에 기고한 KARL 초기의 얘기를 여기 저기에 인용한것으로 보아 그 글들을 틀림없이 읽었든것 같은데, 어째서 HM1AJ가 연맹일을 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부정하는 글을 쓰게 되었는지? 누구의 사주나 협박을 받았기에 KARL지 특별호가 이렇게 허무맹랑하게 작성 되었는지? 아니면 부정부패사회의 소산으로 이사장 선거자금이나 현금을 얼마나 음성적으로 받은것인지? 그렇다면 그 배후 인물은 누구인지? 추측만 가능할뿐 아무 증거도 없고, 해명을 요구하였으나 회신도 없어 도저히 이해할수가 없으며, KARL 초기에 한국에 있든 ham들은 누구나 알고있는 이런 사실을 이렇게 음패하려는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입니다. 이것은 15년의 길다면 긴 세월을, 젊은 나이에, 온 정성을 연맹일에 전념하였기에, 일생 중에서 유일하게 배신 당한 이번의 배신감은 말로 표현할수가 없읍니다. 오늘의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은 모든 회원이 일치단결하여 정성을 다하든 초기의 순수한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상한 부패 단체가 된것 같습니다. 여기에 지난 6월에 연맹에 보낸 정정 요구 편지의 내용을 그대로 올려 놓아, 회원 여런분의 판단을 바랍니다.

한편 KARL 이사장 명의로 감사패를 보내왔는데, 기관지를 이렇게 편집해 놓고 그것을 음패하려는 의도에서인지?, 연맹일을 하나도 한일이 없다는 내가 감사패를 받을 이유가 전혀 없기에 다음의 편지와 함께 연맹에 반송하였읍니다. 그러나 자기네 잘못을 전혀 깨닸지 못하는 사람들인듯, 유부원이나 이사장이나 잘못을 모르는지? 할말이 없는지? 잘못을 인정하기 싫은지? 아무 반응이 없읍니다.

hl0hq@hanmail.net        DS2HTR       김형수  이사장

ds1olh@hanmail.net.      DS1OLH       유부원 OM

 

행사도 많고 방대한 조직인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을 이끌어 나가느라 매일 고가  많으실것으로  사료됩니다.

이번에 발행된 KARL 특별호를 받아보고, 우선 눈에 뜨인 시정되어야 가지를 지적하고자 하며, 이미 발행된 KARL지를 수정할수는 없고, 앞으로 제인가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의 정사(正史) 쓰여질 기회가 온다면 반영하여 주시기 바라면서 알려 드리고자 하며, KARL지의 다음호에 정정기사로 실려질   있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 아마추어무선  법규  초안  작성    체신부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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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마추어무선 법규 초안이 연맹에서 작성되어 체신부에 제출 된것은, 1959 초기로 (2/25/59),  체신부의  아마추어무선  개방 예고가  나오면서 우리나라에도 아무추어무선을 관리할 법규가 필요하게 되었으나, 담당 부서인 체신부 전파관리국 담당자들이 아마추어무선에 대한 이해가 절대로 족하여 법규를 만들기는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체신부에서 Ham 개방을   예고한 10월 말 이후에, 연말이 가까워서, 연맹에서 법규 초안을 만들기에 수하여, 다음해인 1959 2월에야 제출 했든 것입니다 그러나 법규 초안이  착수된것은 강기동OM 이미  미국으로  떠난지  여러  달이  지난  후였으므로   OM 참가는 시기적으로 불가능 했고, 기억에도 초안  작성을  함께  일한 기억은 없는데, 어디서 나온 정보 인지는 몰라도, KARL 특집호 76 이지에는 "HM1AJ 조동인은 강기동등과 함게 ...... 무선법규 초안을 작성하였 ....."라고 되어 있읍니다. 무선법규 초안은, HM1AJ 몇달에 걸처 주로 미국과 일본의 아마추어무선제도를  공부하고,  영국,  독일의 아마추어무선제도 참고로 하여, 혼자서 작성한 후에, 여러 아마추어들의 Review 받은후 신부에  제출한것으로여기서 "강기동"이름은 삭제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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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M9A/p  대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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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9A/p 처음부터 제주 Expedition위하여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허가된  이동무선국이고, KARL지는 전국민을 위한 홍보 보다는 일차적으로 KARL 원들이 읽는 ham 위한 책입니다. 따라서 국위선양을 위한 홍보 보다는 원들의 최초의 이동무선국으로 한국 최초의 Expedition이었든 제주Expedition 강조 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대 KARL 특집호에는,  정치적으로 국위 선양에 크게 공헌했다는 이유 때문인듯,  독도  Expedition  크게 다루어지고, 제주 Expedition 늦게 몇줄 정도로 보이지도 않게  다루어지고 있읍니다. 이것은 주객이 전도    것으로, 한국  최초의 Expedition HM9A/p 제주 Expedition, 아무리 독도원정이    정치 적인 가치가 있었다 하드라도, 독도 Expedition 보다는 크게 보도 되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정사(正史)  때에는  이사실을  잊지마시고,   보다는 한국 최초의 이동 운영이었든 제주도 Expedition 크게 소개되 어야 하고, HM1AS 이광수 OM 독도 원정기 보다는 HM1AA 조요성 OM 제주도 원정기가 실렸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HM1AA 조요성 OM 제주도  원정기는 1960 9/10 합병호에 있음.) 당시의 체신부의 입장은 사회가 사회였기에, 이동국 허가를 고정국 보다 훨씬 주저했으며, 연맹이 이동국 허가를 받는데에 고생이 많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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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마추어 무선의  개방 공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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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아마추어무선은 19596월에 아마추어무선국인 HL9TA KARL 부국으로 가허가 되고, 8월에 본허가가 나와서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정혜선/ 강기동 OMs KARL 떠난지 1 이상이 지난 후의 일이고, 개인 아마 추어무선은 그보다도 다시 1년이 걸려, 1960 9월초에 HM1AA - HM1AH가 허가되어, 이것은 / OMs연맹을 떠난지 2년 반 후의 일입니다. OM/OM KARL 재임중에 한국의 아마추어무선 개방을 위하여 노력한 것은 부인 할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들의 재임중에는 아무 성과도 못올리고   떠났고 그후에는  연맹과  연락이  두절되어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였읍니다.

따라서 한국에서 아마추어무선이 개방된것은, 비록 어느 한 두 사람 만의 기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진것은 아니고, 5년이상을 여러 사람이 계속 노력한   아마추어무선연맹의 단체로서의 힘이 가장 컸었지만, 결국 개방으로 이끈  공로자는, 역시 위에서는 당시 공보처 방송관리국의 기감으로 KBS 최고  기술책임자였든 이인관 연맹 이사장님의 체신부의 상위 공무원 상대의 정치적 노력과, 당시 총무이사로 실무선 체신부 전파관리국 공무원들을 거이  매주 찾아가서 설득하고 열심히 노력한 HM1AJ 총무이 역할이 절대적이 었든 만은 아무도 부인할수 없을것입니다. 그당시에 아무추어무선연맹을 가장 가까이서 보아온 HM1AA, HM1AB, HM1AC, HM1AD, , HM1AX, HM1BB, HM1BI, HM1CC (대부분 서울공대의 LCR Club 멤버들) 초기 아마추어의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같은 답이 나오겠지만, 불행이도 이들이 전부 미국에 있어, KARL 특집호 제작에는 전혀 정보를 제공할수 없었든것이 이런 오보를 일으키게된 원인중의 하나가 아니었든가 싶습니다.

이들 몇명과는 DS1OLH OM 전화로 인터뷰를 한것 같지만, "아마추어무 개방에 가장 공헌한 사람이 누구냐?" 직설적으로 묻지 않은 아무도  이런 사실을 의제로 거론하지도 않았겠고, 나와의 전화 통화 중에도 이것이  주제가 되어 얘기한 기억은 없읍니다. 우리들로서는 누구나 모두 인정하고 었든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라 평소에 얘기할 필요도 없었읍니다.

현제 한국에 있는 당시의 사람인 HM1BX 1958 - 1990년의 가장 중요했 기간중 계속 경남 진해에 있었기에 자세한 내용은 모르고 있었고, 이인관 이사장님이 아직 생존하셨드라면, 정확한 정보를 제공 주실수 있었을텐데,   불행이도 타계하시어 아무 도움도 주셨을것이고, 김규한 부이사장님이 교적 알고 계셨겠지만, 총회를 할때에 사회를 하시고, 법률적  문제가 있을  찾아갔었기 때문에, 역시 자세한 내용은 모르시지 않았나 싶고, 그외는 아마추어무선연맹의 진행을 가까이에서 보고 지난 OM 하나도 없는것 같습 니다.

내가 연맹 총무로서 무슨 일을 했느냐? 하는것은 KARL 1959 10월호 -   12월호에 실었든 "KARL 1954 부터 1959 까지" 글과 (2005 4월호 다시 계제), 2001 7 - 2002 3월호에 연제 했든 "AJ KARL 이야 기" 제대로 읽어 보았으면 쉽게 파악할수 있었을텐데 (이두글은 나의 web site www.thechofamily.com 올라와 있어 지금도 언제나 읽을수 있음.)  이러한 글들의 내용은, 그렇게 됐는지는 전혀 알수 없지만, 이번 KARL  특별호 제작에서는 완전히 무시된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처음 3년간 KARL 창립에 공헌을 했고, 아마추어무선 개방을 위해 노력했다고는 하나, 결국 결과는 내지 못하고 연맹을 떠난 정혜선 OM,  강기OM 만이 아마추어무선 개방을 위하여 노력한것 같이 묘사되고, 아마추어무 선의 개방이 마치 그들만의 노력으로 때가 되어 저절로 이루어진것 처럼 표현 KARL 특별호의 기사는 전적으로 잘못되었고, 그때 당시의 체신부의 정이 지속적인 연맹의 노력 없이 때가 되어 저절로 개방될 형편이 아니었으며,  반듯이 수정되어야 절대적인 오류임을 지적할수 밖에  없읍니다.

그러나  HM1AJ 아마추어무선의 최대 공로자라고 선전해야한다는 얘기는 닙니다. 어떻게 되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전혀 이해할수가 없지만, 공이 있었 없었건, 특히 아마추어무선이 개방되든 1959 - 1960 2년간을 포함하 누계 15년간, HM1AJ 연맹의 총무로 연맹 일을 하였다는 사실조차 기록하지 않고 있어, 정혜선 OM 강기동 OM에게 활애된 지면과 비슷하 1-2 페이지 정도를 활애하여 HM1AJ 총무이사로서의  활약상을  소개하면 , 아마추어무선의 개방이 그때에 이루어젔음을 명기하는 정도의 기사는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개인의 입장만 생각한다면 이제 나이 고령이라 남은 여생도 얼마 안남았고, 앞으로 한국을 방문 하거나 한국의 ham들을 만날 기회도 없다고 생각되므로, KARL지에 무어라고 쓰여젔건 문제 될일은 아니지만, 앞으로 언젠가 한국 아마추어무선연맹의 역사가 쓰여질  회가 온다면, 역사만은 사실에 입각하여 사실이 사실대로 왜곡 없이 쓰여진 正史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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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HM1AM

65페이지의 HM1AM 사진설명 "임정혁 YL HL9TA SHACK에서 교신하는 모습과 허가장, TV방송에 출연한 모습을 담은 사진 입니다" 잘못된 부분이 있읍니다. Shack HL9TA SHACK 아니라 HM1AM 집에 있었든 HM1AM shack이고, "허가장" 없고, 훗날 결혼후에 만들어진 HM1AJ 공동 QSL card 밑에 있읍니다.

5)  HM5AT 김기환

이것은 HM1AT 김세환 OM으로 부터 알려 온것인데, 사소한 미스이기는 지만 159페이지의 "김기환" "김세환" 오기이고, 당시 부산에 있었기 때문 HM5AT 표기한것 같으나, 사진의 shack 서울에 있을때의 HM1AT shack이고, 공식적으로 Call Sign HM5AT 바꾼일은 없으므로 "HM1AT 김세환"으로 표기하는것이 옳습니다.

끝으로 이것도 사소한 오류이지만, 여기 저기에 KARL "환갑" 축하한다고  되어 있는데, "환갑"  59세이고, 60년은  "진갑"입니다. 이것은 1231 출생한 아기가 다음날에 2살이되는 한국 특유의 나이 계산법 때문인데, 사람이 특히 요새 젊은 사람들이 많이 범하는 실수 입니다.

이상 참고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15년간 연맹을 이끌어 나갔든 경험이 있어 대략 추정은 합니다만, 때에 비하여 엄청나게 비대해지고, 각종 행사가 전국적으로 끊임 없는 연맹을  이끌어 나가느라, 정말 수고가 많으시리라 생각됩니다. 계속 수고해 주시고,  KARL 무궁한 발전을 멀리서 기원 합니다.

 

Very Best 73 !!     de KE6AJ/ex-HM1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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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Dong-In Cho

To: Boo-Won Yoo (DS1OLH)

Sent: Sunday, May 17, 2015 4:48 AM

Subject: KARL지 특집호 관련.

 

DS1DLH OM,

 

KARL 60년 기념 특집을 만드느라 오랜 기간 엄청난 수고를 하신것아 역력히 나타나 감탄을 금할 갈이 없었읍니다.

어떻게 그 많은 자료들을 뫃았는지? 설명이 없어도 그 노력과 고생은 엄청 컸으리라 쉽게 알수 있었읍니다.

앞으로 언젠가 KARL 60년사 또는 70년사의 역사가 쓰여진다면, 이책의 자료는 막대한 공헌을 할것이 틀림 없다고 믿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개인의 불만 때문에 OM의 기분이 많이 상했으리라고 믿어지며, 나 역시 10여년을 연맹의 아마추어무선 개방과 기초확립에 고전분투하였기에, 성심껏 일한 노력만큼 많은 실망을 할수 밖에 없었읍니다.

문제는 특집호에 내 사진은 그 어느 누구 사진보다 많이 계제되었는데 (연맹일을 많이 하다보니 자연히 약방 감초 마냥 모든 행사에 참석했고, 이번에 아마 누구보다도 많은 사진을 제공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든 사진들이 간단한 사진설명으로 "이것이  HM1AJ이다"라는 설명 이외에는 아무 말도 없는 반면에, 정혜선/강기동의 사진 설명에는 마치 그들만이 모든 KARL일과 아마추어무선 개방을 위한 노력을 한것처럼 써 있는것이 크게 내 감정을 거슬릴수 밖에 없었읍니다. 그들은 초기 3년만 일하다가 아무 성과도 올리지 못하고 KARL을 떠난후에는 전혀 도움이 안되었었는데.... (그래도 나는 글을 쓸 때마다 그들의 노력을 명시 했읍니다.)

DS1OLH OM은 우리가 활약하든 시절에는 HM ham계에 있지도 않았을것으로 생각되고, 따라서 나에 대해서나 정혜선/강기동에 대한 선입감이 전혀 없었을 터인데, 왜 어떻게 해서 이런 결과를 초래했는지? 정말 이해 할수가 없었읍니다.

한가지 추정해 본것은 내가 연맹일로 활약할 때에 내 주변에서 나를 도와주고 실제로 경험한 초기의 HM ham (HM1AA, HM1AB, HM1AC, HM1AD, HM1AE, HM1AG, HHM1AM, HM1AX, HM1AY, HM1BB, HM1BI, HM1CC 등등 - 주로 서울 공대의 LCR Club member)은 모두가 미국에 와 있어서 당시의 실정을 OM에게 설명할 기회가 없었으나, 정혜선, 서정욱, 김동주등 정혜선/강기동과 가까운 사람들이 한국에 많이 남아 있어, 편향된 정보의 입력이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보았읍니다. (이것은 단순히 나의 추측입니다.) 더구나 모든 일을 제일 자세히 아시는 이인관 초대 이사장님도 돌아가셔서, OM이 공정한 정보를 얻는데에 많은 지장을 초래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았읍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드라도, 내가 쓴 글이 KARL지에 남아있어 OM도 그것을 모두 읽어 보았을텐데,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지? 나로서는 아직도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의문입니다.

나하고 접촉도 없든 OM이 나에게 무슨 감정이 있어 고의적으로 했을 이유도 없다고 믿어지고, 그동안 서로 많은 e-mail을 교환하면서 사이좋게 협조를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무심코 한 단순한 실수인지? 아니면 무슨 이유가 있는지, 한번 해명을 해주시고, 이 어색한 관계를 정산하는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 이글을 씁니다.

공연히 이글이 관계를 더 자극한 결과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경탄합니다만, 특집호에 수록된 그 방대한 데이터들은 나의 예상을 훨신 초월하는 엄청난 것이었읍니다.

다시 한번 축하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Very Best 73!!  de ex-HM1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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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 60주년 특집호에 실린 강기동/정혜선의 축사 일부

 

이러고도 모자라서, 음성적 광고료를 얼마나 받았기에, 특집호중 강기동/정혜선을 과잉 광고한 부분만 몇달후의 7-8월호에 반복 계제하였읍니다. 의도가 뭔지는 몰라도, 어떤 잡지도 이런 유치한 짓을 하는것은 못 보았읍니다. KARL이 이제는 강기동 선전 담당기관으로 전락한것 같습니다. hi 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