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는 부모님의 젊으실때의 초상화,
아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바로 전해인 1963년에 미아리집에서 찍은 사진.


남아있는 제일 오래된 내 사진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것은 지금 뉴저지주에 살고 있는 사촌 동생 동익. 왜
이렇게 더러운 옷을입고 맨발로 다부서진 의자옆에서 사진사를 집으로 불러다 이사진을 찍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태어나서 국민하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든 청산의 위치. 내가 살든 당시에는 인구가 근 2만명의
 큰 면이었는데 최근 통계로는 5천명도 안된다고 한다. (빨간 화살표가 우리집이 있든곳)
(청산에 대한 나의 추억은 제3부 "나의 경험담과 이야기들"에 있음)


어릴 때의 7남매가 청산에서. 앞의 어린애는 큰누님(동혜)의 장남인 이상완.


옛날의 청산국민학교로, 우리반 사진은 없고,
이것은 나보디 4년위인 셋째누님(동선 - 화살표)반 사진으로  옛청산의 시골학교 모습.


청산집 앞마당에서 찍은 큰형님(동준) 결혼식 사진으로, 신랑오른 쪽에 아버님 3형제분이 차례로 서 계시고, 신부 오른쪽에 어머님과 할머님이 앉아계시다.


성구 백일에 찍은 사진으로, 어머님이 성구와 둘째누님 장남인 박무서를 안고 계시고, 뒤에는 내 다음으로
셋째누님(동선), 성구 어머님(신동숙), 들째누님(동순) 그리고 넷째누님(동현).


워낙 작은 사진(2.5cm x 3.5cm)을 확대하다보니 화질이 좋지 못한데, 1.4후퇴로 부산으로 피난가서 생활하든 때의 사진들. 사진의 소년은 성구. 왼쪽은 셋방사리하든 철도국관사이고 오른쪽은 텐트에서 수업하든 부산사범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