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했던 첫번째 미국회사로, 대방동에 한국최초의 반도체회사로 설립된 "훼어챠일드 쎄미코어" (Semikor= Semiconductor Korea). 중앙상역에서 월급도 못받고 나온후에, 몇달을 놀다가, 12월에 이 회사에 13번째 사원으로 입사하여, 여기서 생전 처음으로 미국식 경영을 배웠다. 왼쪽 위의 사진이 쎄미코어의 정문이고, 오른쪽 위의 사진이 미국인 사장과 함께 초기에 일한 창립멤버들이다. 하단의 두사람은 나에게 미국식 경영기법을 단시일 내에 교육하여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들로, 왼쪽은 사장이었든 Mr. Clevenger이고, 오른쪽은 처음에는 나의 직속 상사로 있다가, 6개월만에 나를 훈련 시켜서 자기자리인 "생산기술부장"자리로 승진시켜놓고, 미국으로 돌아간, Mr. Silverstein으로, 공무, 생산기술, 사원교육, 생산기기정비 등 가장 광범위한 분야를 나에게 맡기고 귀국했다. 이 쎄미코어 근무 3년반을 시작으로 반도체 생산의 미국회사 근무가 시작되어, 결국은 그다음의 KMI근무를 거쳐 미국으로 오게되었고,반도체가 전문분야가 되게하여, 나의 일생을 바꿔놓은 회사이다.  (자세한 쎄미코어 경험담은 제3부 "나의 경험담"에 있음)

쎄미코어를방문한 훼어차일드 본사사장 호간박사를 위한 환영파티에서 우리부부와 담소하는 호간사장. 당시
심각한경영문제에 직면해있든 훼어차일드가, 모토롤라의 부사장으로있든 호간박사를 사장으로영입하였는데, 이사실이 공표되든 날, 훼어차일드의 주가가 $32에서 $76로 폭등하였을 정도로 반도체업계의 거물이었다.


성구의 결혼식


대방동에있었든 쎄미코어에 입사하면서, 미아리집에서 이 대방동 집을 지어 이사를 하였는데 (1967년), 이것은 대방동 집에 세워져 있든 나의 아마추어무선국 안테나이다. 이거창한 안테나는 철탑 바로위에 모터로 움직이는 Antenna Rotator가 달려 있어,방안에서 360도 회전시키며 외국의 아마추어무선국들과 교신했었다.


IARU (세계아마추어무선연합)이 발행한, 세계의 6대주와 전화교신을 했음을 증명하는 "6대주 교신상"


전세계에서 130개 국가와의 교신을 증명한 ARRL (미국아마추어무선연맹)의 증명서 


미국의 CQ출판사가 개최한 전세계 원거리 교신경기에서 한국지역 우승자 상장.


대방동 집에서의 웅구와 충구.



 1967년 11월 22일에 중구 탄생.


1968년 1월 1일에 새로 들어온 새식구, 성구댁과.


중구 백일 날.


삼형제


좀더 자란 삼형제


속리산 입구의 정일품송 앞에서 - 코스모스가 한창이든 1969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