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미코어근무 3년쯤된 1969년말에, 쎄미코어에서 함께근무하든 최만립씨(재미교포)가 한국에서의 계약된
근무를 마치고 미국에 돌아가서, 당시 이 Silicon Valley에서는 크게 성공한 반도체회사로 유명했든 AMI(American Microsystem Inc.)라는 회사와 교섭을하여, AMI의 자회사로 KMI(Korean Microsystems Inc.)를 한국에 세우기로 했는데, 공장장으로 와줄수 없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이듬해인 1970년에 2월말로 쎄미코어를 청산하고, 3월1일에 서울을 떠나, 당시로는 반도체중에서도 최첨단기술 제품이든 MOS-LSI(多集積 大型集積回路)의 생산공정 교육을 받으러 미국에 온것이 내 최초의 미국여행이었다. 여기서 두달간 교육을 받고 한국에 돌아가, 부평공업단지내에 "대한마아크로전자주식회사"를 건설한것을 시작으로, 한국, 미국, 대만의 세 나라에 걸쳐, 13년간의 AMI 근무가 시작되었다. 사진의 중앙이 최만립사장이고 오른쪽이 쎄미코어에서 부터 함께 일했고, KMI 기술부장으로 나와 함께 미국에 와서, 두달간의 교육을 함께 받은 심규만씨이다.


부평공업단지내의 명물이든 대한마이크로전자주식회사 - KMI. 전통적인 한국의 공장형태에서 완전히 벗어나, 담대신 나무를 심었고, 앞마당은 미국식 잔디밭으로 비치파라솔을 세워놔서 종업원들의 휴식처였고, 수위실을 없애고 건물내에 안내원이 외래객을 맞아주었다. 반도체를 하려니까, 공장안은 어떤병원의 수술실보다도 깨끗하여, 먼지하나 없었고, 여공이 상사의 지시명령에 의하여 움직이는것이 아니라, 간부는 여공의 편의를 돌봐주기 위하여 존재한다는 사상이 철저하였다. 이공장은 내가 금성사에서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것을 많이 배우고, 쎄미코어에서 "이렇게 해야된다"는것을 배워, 둘을 합쳐서 경영원칙을 세워 크게 성공한 공장으로, 당시 AMI의 멕시코공장과 경쟁하여 설립 반년만에 불량율을 십분의일로 감소시키는 성과를 거두어, 재료비절약만으로도 총경비보다 많아, 실질적으로 경비없이 돈벌며 운영된 회사가 되었고, AMI본사로부터
기적을 이룩한 회사라는 (Miracle Operation) 칭찬을 받았었다.
(자세한 KMI 경험담은 제3부 "나의 경험담"에 있음)


KMI의 건설을 담당했든 멤버들이 우리집에서 - 사진은 왼쪽부터 시설 및 기계정비를 담당하여 공장건설의 주역을 담당했든 안중규 생산기술부장, 공정과 제품기술을 담당했든 심규만 기술부장, 본사의 생산기술 담당 Manager로 라인설치를 지원하기위하여 본사에서 파견되어 약 3개월간 함께 고생한 Mr. Fred Balmer, 공장의 건물건설을 지원한 본사의 시설담당 Manager Jack Knoll, 그리고 우리 내외 (집사람은 1970년 7월 28일에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얼마 안되어 상복을 입고 있다). 본사에서의 지원은 이두사람 뿐이었고, 이들이 돌아간 후에는 기술고문으로 경영에는 참여치 않은 미국인이 한명 와 있었을 뿐, 100% 한국인 만의 손으로
이 미국회사가 운영되었다.


KMI 시작 당시의 간부들 (아가씨는 사장비서)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KMI 작업현장.


때의 우리집의 카우보이 삼형제 - 1970년


KMI와 함께 지은 화곡동의 새집으로 이사가서 처음 맞은 1월1일에.


화곡동 집에서의 아마추어무선국


박정희 대통령의 KMI 방문


KMI를 방문하고 강한 인상을 받은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청와대에서 산업포장 수상 - 1971년10월25일



결혼 10주년에 신혼여행을 갔든 온양관광호텔을 다시 찾아서.


KMI간부들이 온가족과 함께 청평유원지에서. - Cho : 조동인 공장장
   Shim : 심규만 기술부장,      An   : 안중규 생산기술부장
Choi : 최동휘 총무부장,      Shin : 신명인 경리부장 


    
어느날 화곡동에서


미국으로 가기 직전의 우리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