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T SAS

 

이래서 1996년에 한국에 돌아간지 10년만에 미국으로 돌아왔는데, 7월경부터 나혼자 출장 형식으로 호텔 생활하면서 거이 반년을 들랑 날랑 하였고, 짐 싸들고 전부 이사를 온것은 96 11월이니까, 한국에서 산것은 871월에 서울로 이사간지 꼭 10년에서 두달정도 모자라는 기간이었다.

AST에서는 삼성 타이틀로는 여전히 전무였지만 AST 타이틀은 품질담당 부사장이었으니까, 그래도 조금은 출세했다고 할까? 어쨌든 AST를 삼성이 사게된 경위도, 삼성 스타일이었다. 미국의 NCR였든것으로 기억하는데, 자기네 방계 회사인 Maxtor였다고 기억되는 회사를 삼성이 사지 않겠느냐고 제의해 왔었다고 한다. 그러나 거이 망해가고 장래성도 없어보여 안 샀더니, 현대가 이것을 샀다한다. 그 얘기를 들은 삼성의 황제폐하께서, 삼성이 현대에게 선수를 빼았길수 있느냐고 노발 대발 하시는 바람에, 부랴 부랴 대상을 물색해서 산것이 AST였는데, 미국식 재무구조의 대차대조표를 미국 회사 경험이 별로 없어 제대로 이해도 못하고 성급히 결정을 내려, 중개하는 미국 회사의 말만 믿고 사버린것 같았다.

이래서 사놓고 보니 경영 상태는 엉망이고, 처음에는 그래도 미국을 안다고 재미 교포였든 사람을 사장으로 앉혔는데, 원래 R&D 출신이라 이런 회사의 경영에 경험도 없었고 이해도 부족하여 실패하였고, 그후에는 전형적 삼성 임원을 내보냈는데, 이친구가 영어도 전혀 못하고, 미국 회사나 미국 경영은 전혀 모르면서 전형적 삼성 스타일로 밀어 부치기만 했으니, 이회사가 제대로 될이도 없었다. 이래서 하루에 백만불씩의 결손이 계속났으니 회사가 견딜수가 없었다.

결국 AST는 산지 일년 남짓 동안에 막대한 결손만 내고 다시 매각해 버렸고, 이래서 내가 AST에 근무한것도 일년도 채 안되어, 별로 해놓은것도 없었고, 품질이 좀 좋아지기는 했지만 어짜피 잘 팔지도 못한 제품이라, 성공 실패를 따질만한 일도 아니었다.

이동안에 회사가 있었든 Irvine 서쪽 태평양 연안의 Corona del Mar이라는 시에 있는언덕위의 하얀집"을 세들어 있었는데, 크지는 않은 표준형 3 bed room house였지만 전망이 완전히 끝내주는 집이었다. 아무리 휴양지의 최고급 호텔에서도 이런 전망은 본일이 없었다. 북쪽으로는 멀리 L. A.의 최고 부촌으로 알려진 Parles Verdes 언덕이 보였고, 동쪽으로는 Disneyland가있는 Santa Ana Irvine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태평양이 속시원이 펼처저 있으면서 멀리 Catalina 섬이 가믈가믈 보이고…. 야경은 낮보다도 더 멋있었다. 워낙 나는 전망 좋은 집을 좋아해서, 이집에 한번 가보고 홀닥 반해서 계약을 해버렸다. (둘째누나네와 인혜 경혜네도 바로 가까운곳이었다)

이집은 가까이에 사는 어떤 성공한 의사가 사서 휴양용 별장으로 쓰다가, 별로 가게 되지를 않게되자 세를 놓는 것이었는데, 하도 집이 마음에 들어, 이집을 사서 은퇴후에 여기서 살까하는 생각도 들어, 사자고 제안을 했었다. 그래서 집주인을 만났었는데, 진짜 미국 부자를 처음 만나보았다. 어디서 만나자기에 갔드니, 그 비싸고 미국서도 거이 본일이 몇번 안되는 Rolls Roys 를 몰고 와서, 부자들만이 모이는 Private Club에를 함께 들어 갔는데, 이것은 완전히 격이 다른 별천지였다. 저녁을 먹으면서 얘기를 들어 봤드니, 자기집은 건평만 250평이 훨신 넘는단다.

결국 집값도 너무 비쌌지만, 그보다도 그동네가 엄청난 부촌이라, 길 앞을 지나는 차의 거의 반이 벤쓰일 정도여서, 나하고는 생리부터 안맞는 동네인것 같았을뿐 아니라, 아무래도 은퇴후에는 옛친구들과 함께 사는것이 좋을것 같아서 기권해 버렸지만, 정말 아까운 집이었다.

이렇게 AST에는 일년도 못있었는데, 이번에는 텍사스주의 Austin에 반도체에서 Wafer Fab 공장을 짓게 되어, 거기에 가서 처음부터 품질관리 제도를 확립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다보니까 삼성덕에 팔자에도 없는(?) 텍사스에까지 흘러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Irvine에서 텍사스로 이사를 갔고, 거기서도 품질담당 부사장이라는 타이틀로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곳은 다시 반도체였기 때문에, 한국에서 옛날에 함께 일하든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어서, 생소하지도 않았고, 그런대로 재미있게 일을 할려고 하는데, 반년 좀 넘어서 한국에 IMF사태가 벌어젔고, 삼성에서도 긴축 재정을 실시하게 되어, 삼성 임원이 누렸든 특혜가 많이 삭감이 되었었다. 이래서 더이상 삼성의 호강도 못하게 되어, 김이 새어 있는데, 임원도 지금 고만 두면 6개월치 월급을 일을 안해도 주겠다고 하기에, 이제 고만 일하자고 사표 내고 나와 버렸다. 이때가 1998 2월말로, 113개월의 삼성 생활의 종결이었고, 대학을 나왔든 1958년부터 40년간의 직장생활을 이렇게 끝마첬는데, 그때 내 나이가 만 63 4개월이었다.

이래서 텍사스에서는 반년 남짓 밖에 안있었는데, 처음에는 아파트에 두어달 살다가, 오래 있을 셈으로 집을 사서 들어 갔는데, 반년도 못살고 팔아버렸지만, 그동안에 집값이 올라, 믿지지는 않았고 약간이나마 이익을 냈으니, 운은 억세게 좋은 사나이였다. 그래도 그동안에 그곳에서도 골프 클럽 회원권을 사서 주말에는 골프도 자주 첬고, 그런데로 재미있는 생활을 했었다.

이렇게 머지 않아 은퇴할 생각을 미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회원으로 있는 Castlewood Country Club 회원권은 일직이 4년전인 19943월에 이미 확보하여 놓았었고 (그동안 매월 회비는 냈으나, Out of Town member라고 반만 냈었다.), Country Club에서 15분 거리 밖에 안되는 이 집도 1년 전인 1997 4월에 사놓았었기 때문에, 퇴직후에 준비할것은 하나도 없었고, 텍사스의 집도 쉽게 팔리어, 퇴직 하자마자 짐을 싸서, 차와 이사짐은 트럭편으로 부치고, 우리는 차 한대를 몰고 이리로 오다가, Phoenix에 있는 옛 날에 아마추어무선을 함께하든 서울공대 후배네 집에 들러 몇일 묵으면서 골프도 치고, 오는길에 L. A.에 들러 중구도 만나보고 천천히 왔드니, 그동안에 짐은 이미 와있어 순조롭게 Retired Life를 시작할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