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ired Life

 

이렇게하여 직장 생활을 끝마치고, 무직자 생활로 들어 갔는데, 한국에서 일하다 퇴직을 하면, 많은 사람이 평생을 오직 회사만을 위해서 살다가 갑자기 할일이 없어저 허탈감에 빠지고, 하루를 보내는것이 큰일이 되어 일직 늙는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나는 할일이 너무 많아 더 바빠젔었다.

우선 그동안에 시간이 없어 마음대로 못한 골프도 많이 처야겠고, 아마추어무선도 다시 시작해야겠고, 출장으로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가고 싶은대를 간곳이 아니니까 가고 싶은곳을 가고 싶은때에 여행도 해야겠고, 콤퓨터와 씨름도 해야겠고, 거기에 충구가 쌍동이 손자까지 만들어 주었으니 손자와 놀기도 해야겠고 ….

내가 일직부터 회원이된 Castlewood Country Club 에는 이 동네의 내가 아는 한국인들이 거이 모두가 회원으로 되어있어, 800명가까운 회원중 100명 가까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보통 미국의 골프 클럽은 350명정도의 회원이 있는데, 우리 클럽은 18홀 코스가 두개이기 때문에 회원수가 800명에 가깝다.) 내가 아는 누구하고나 부담 없이 함께 치자고 얘기할수가 있어 (회원은 Green Fee를 안내지만 비회원을 초청하면 비싼 Green Fee를 누군가는 내야하는데), 일주일에 서너번은 보통 이고, 어떤주는 4-5일 연속근무를 한일도 많았다. 옛날 삼성에 가기 전에 Palo Alto Hills Country Club에 있을 때에, 늙은이들이 (그래야 지금의 내나이가 고작이었겠지만) 주말에 치는것을 보고, 할일 없는 사람들 주중에나 나오고 주말에는 직장인들에게 양보 좀 못하느냐고 투덜거렸었는데, 막상 그 나이가 되보니까, 나는 놀아도 함께 칠 사람들이 모두 직장이 있어, 결국은 역시 주말 골프가 많아지는것은 어쩔수 없구나 하는것을 깨닫게 되기도 하였다.

미국에 처음와서 얼마 안되어서 부터, 미국 아마추어무선사 자격시험을 보아서 미국 면허증은 일직부터 갖이고 있었기 때문에, 삼성 때문에 한국에 가기 전의 Cupertino집에서도 아마추어무선국을 KB6IR이라는 미국 호출부호로 설치하여 놓고, 주로 한국과 일본의 아마추어 친구들과 교신을 많이 하였었는데, 이제 시간 많이 남겠다 또다시 시작하려고 우선 이집에다 간단한 안테나를 세웠드니, 당장 이동네의 소위 Home Owner’s Association이라는데서 철거해 달라는 요청서가 날라왔다. 옥외 안테나는 동네의 경관을 해치고, 집 값을 떨어트려 안된단다. 알고보니 적어도 20년 이상 전에 독립 주택으로 따로 따로 지은 집들은 괜찮은데 (Cupertino 집 같이), 근래에 단지가 조성되어 한꺼번에 수십 수백채가 들어선 곳은 전부 이 모양이었다.

아마추어무선은 하고 싶고, 자동차에 무선기를 설치하고 이동운용도 해봤는데, 워낙 간단한 안테나 밖에 못쓰다 보니까, 거이 한시간은 운전하여 태평양 해변가 까지 가야 가물에 콩나기로 한국이나 일본과 교신이 되니 그것도 재미 없었다. 미국인들과 교신하려니, 회사 업무나 일상 생활에는 지장 없는 영어지만, 디립다 농담만 하는 영어는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수가 없어서 그것도 재미없고, 그보다도 HM이라는 한국 호출부호를 쓸때에는 한국에 아마추어무선국이 많지 않다 보니까 진귀하다고 내 신호가 좀 약해도 많이들 불러 왔었는데, 흔해 빠진 미국의 W K자로 시작되는 호출부호는 누가 흥미도 없어 가까운 동네 친구 외에는 (가깝다고 해도 몇백km는 되지만) 불러주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한국의 값어치가 미국보다 이렇게 비싼것은 아마추어무선 세계가 제일인것 같다.

그래서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다가, 용단을 내려 아마추어무선국을 설치할 집을 하나 더사기로 하였다. 취미를 위해 집을 따로 산다는것이 너무 호화 사치 같이 들리기도 하겠지만, 미국에서는 집값의 20%만 내면 되니까 그 정도의 돈이라면 취미로 배도 사고 비행기 까지도 사는 판인데 집이라고 못살것 없지 않겠느냐 싶었고, 이동네의 집 값이 하도 잘 올라가니까 투자가치도 좋을것 같아, 한달을 물색하여 우리집에서 직선 거리로 1마일 정도 되어 5분이면 갈수있는 거리에 30여년된 낡고 조그만 집을 하나사서 아마추어무선국 KE6AJ를 개국하였었다.

안테나도 10여메터 되는 철탑을 시의 설치허가까지 받아 옆마당에 세우고, 고성능 안테나를 그위에 올려, 미국에서 아마추어에게 허용되는 최대전력 1KW의 강력한 전파를 냈드니 서울을 비롯한 한국 전역과도 교신이 잘되고, 인도네시아에 나가있는 한국 햄과도 교신을 많이 했고, L. A.에 있는 많은 한국인 햄과도 교신이 잘되어, 아주 시간 정해 놓고 이렇게 세계에 퍼저있는 한국인들과 별 잡담을 다하며 교신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한 일년 하다 보니까, 한국에서는 아직도 먼 외국과 교신할수 있는 설비를 가춘 햄국이 많지 않아, 만날 만나는 사람들하고만 만나게 되고, 한국 햄들아니면 아무리 전파가 강해도 흔해 빠진 미국 호출부호로는 진귀한 나라의 햄국은 불러도 대답도 잘 안해주고, 한국의 100W가 미국의 1,000W보다도 훨신 위력이 크다는 사실을 점점 더 실감하게 되었을뿐 아니라, 5분거리는 별것 아닌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운용을 해보니 매일 거기를 가는것도 번거롭고, 아마추어무선이란 역시 집안에 설치해 놓고 아무때나 시간 날 때마다 들어보고, 전파상태가 좋아 교신이 잘되면 나가야지, 시간 맞추어 갔다가 전파상태가 나뻐서 허탕치고 돌아오면 김이 새어 예상같이 재미있지가 않았다.

거기에 옛날에는 국제전화가 값도 엄청 비싸고 걸기도 힘들어, 아마추어무선으로 먼 외국과 공으로 통화한다는 사실 자체가 큰 매력이었는데, 그동안 세상이 바뀌어, 이제는 손바닥에 들어가는 휴대전화로 언제 어디서든 거이 공것에 가까울 정도의 값싼 통화요금으로 누구하고나 마음데로 통화가 되는 세상이 되고, 인터넷까지 튀어나오다 보니까, 아마추어무선도 점점 퇴색해가는 세상이되고 말아, 이것도 흥미를 잃게하는 하나의 원인이었다.

이래서 결국 일년 남짓 운용한 아마추어무선국을 문 닫고, 그동안 그많이 투자한 설비를 전부 철거해 버렸는데, 그후 이집은 남에게 세를 주었다가 최근에 팔았드니, 그동안 이 동네 집값이 하도올라, 아마추어무선으로 날린 돈보다 몇십배이상으로 이익이 나서, 아마추어무선 덕택에 돈을 번것은 이것이 평생 처음이었다.

퇴직을 하고나니 이제는 회사돈으로 호강하는 여행은 끝났고, 이제부터는 내돈으로 여행할수 밖에 없었지만, 워낙 차 몰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까 여행도 많이했다. 1998년에 퇴직하고 그동안 돌아다닌 큰 여행만 열거하면 ….

2000 1/31 - 2/4     하와이 골프여행 (동행 : 심규만 부부)

2000 6.7 - 6.19     미국서부 자동차여행 (동행 : 명희 내외, 인숙)

2001 1.20 - 1/26    하와이 골프여행 (동행 : 성구내외, 심규만 내외)

2001 2/23 - 3.2     멕시코 아카풀코 Castlewood 골프클럽 단체여행

2001 4.13 - 5.1     한국 (제주도 골프 3일 포함. (동행 : 삼성의 김광호회장, 심규만내외)

2002 8/5 - 8/11     캐나다 밴프 관광골프여행 (동행 : 심규만내외)

2002 10/27 - 10/31  남부 California골프여행 (동행 : 심규만부부)

2003 8/12 - 8/21    알라스카관광 및 캐나다 골프여행  ( KMI 삼총사부부)

2003 10-16 - 10/29  남호 결혼식 및 Florida 골프여행  (동행 : 심규만부부)

2004 1/26 - 2/2     멕시코 캔쿤 (Country Club 단체여행)
                                      (동행 : 김광호회장, 심규만, 안중규 부부들)

20046/25 - 6/29    캐나다 밴쿠버의 빅토리아섬 골프여행
                     (동행 : KMI의 옛 친구들 부부 네쌍)

이만하면 적지않게 돌아다녔는데, 이 여행들의 자세한 내용은 사진들과 함께, 이 페이지의 위에 있는 [TRIPS]를 클릭하면 볼수있다.

그동안 콤퓨터와도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지금까지 집에 있든 약 5,000장 이상의 사진을 전부 Scanner scan하여 약 20개의 Folder속에 년도 별로 분류하여 저장하였기 때문에, 언제든 어느 사진이나 금방 찾아낼수 있게 만들었고, 결혼 직후부터 찍어온 약 15시간분의 8mm 영화도 비데오로 전부 전환시켜서, 근래에 비데오 카메라가 나온후에 찍은것들과 합처 전부 DVD로 만들었고, 이것을 여러장 복사하여 세아들 들에게 나누어 주어, 저의들 탄생때 부터의 비데오 기록을 갖게 해주었다.

한편 2000 5월에 이 www.thechofamily.com 을 개설하여, 처음에는 중구가 설치도하고 update를 시켰었으나, 중구가 너무 바쁘기에 약 반년후 부터는 이것을 인수하여 내가 직접 update시켜, 우리 집안이나 KMI 엣 친구들 그리고 한국에서 함께 아마추어무선을 하든 친구들 등의 소식을 사진으로 신속하게 한국 미국에 널리 퍼저있는 이들에게 알리기도하고, 옛기록을 볼수있게 만들기도 하여, 많은 가족 친구들이 이 web site를 찾고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한국에서, 옛날에 서울공대를 함께 다니든 조카가 "조앤2 (choand2)"라는 조씨 가족들의 인터넷 까페를 개설하여, 매일 이 까페에서 친척들과 인터넷을 통한 Chatting을 할수있어, 내가 콤퓨터와 지나는 시간을 더 즐겁게 해주고 있다.

이러다 보니, 퇴직후의 Retired Life가 오히려 더 바쁘다고 할수도 있을만큼 되었고, 하루나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는지 빨리가고 일년도 빠른데, 이상하게 나에게는 한달이 제일 느린것 같이 느껴진다.

이렇게 살아온 일생을 정리하기 위하여, “70년의 발자취" (70 Years of My Life) 라는 기록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만들면서 지나온 70년을 (70년은 아니고 기억도 없는 어린 시절 빼고 60년 정도?) 도리켜보면, 내가 대학 2학년 때에 1년을 고민하며 결론을 내렸든 “ENJOY TODAY”의 인생관에 충실하게 살아온것 같고, 그때에 원했든대로, 내가 죽기 직전에 의식이 있어 내일생을 돌이켜 보면서그런대로 주어진 여건하에서 남에게 피해안주고 재미있게 살았다"는 생각만 들면 되겠다는 소원에는 그런대로 충분이 합격할 인생을 살았지 않았나 싶어 여한은 없고, 혹시 다시 태어난다면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다시 태어난다 하여도 이런 일생을 다시 보낼수만 있다면 더 바랄것 없다고 생각된다.

끝으로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었든것 같다. 언젠가 한번 별도로 썼지만, 세대도 수백만년이라는 인간의 역사상 우연히도 제일 행운인 세대로 태어난것 같고, 금성사에서만은 라디오의 규격과 도면을 정리하여 제도화 해준것 밖에는 이렇다한 일도 못해줬으나, 그런대로회사를 이렇게 경영해서는 안된다"는 귀중한 공부를 월급 받아가면서 많이 할수있었고, 그후에는 가는곳 마다 남이 하기 어려운 성공을 거듭해왔으니, 일직이 쎄미코어에 들어가 Mr. Silverstein이나 Mr. Clevenger를 만난것도 행운이었고, 그외에 하필이면 이 Silicon Valley에 자리를 잡아 집 값이 엄청 빨리 오르는 바람에, 아예 부자되려고 생각도 안했으니 부자 못된것은 어굴할것도 없고, 저축은 하나도 안하고 돈 벌려는 큰 노력도 없이 그런대로 먹고 살수있는 Retirment Fund도 저절로 생겼으니, 이런 행운아가 그리 많지는 않을것 같다. 거기에 우리 집안 식구들에게 많은 당뇨도 없고, 혈압도 얕아 고혈압 관련의 치명적인 병 걱정도 안해도 되고, 마음대로 먹어도 체중 변화도 없고, 그래서 건강관리를 전혀 안하다시피 해도 아직 이렇다할 큰 병은 없으니, 이것도 크게 운 좋은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일생에 한번 좋은집 지었다가 있는돈만 다 날리고 들어가 살지도 못한 불행도 있었고, 어떤날은 그놈의 골프공이 홀마다 나무만 때리고 치지도 못할 자리만 골라가며 놓여있거나, 홀마디 방카만 골고로 찾아들어가, 신경질 나게하는 재수 없는 날들도 많이있지만, 그것까지 불평할수는 없고,

이래서

나는 오늘도

"ENJOY TODAY”

를 위해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