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L의 뒷이야기들 

이글들은 원래는 비공개용으로 작성되어,

KARL 60주년기념일로 부터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었으나,

이제  여기에 제한적으로 공개합니다.

 

 

이번에 KARL 창립 60 주년을 마지하여, KARL 창립60주년 기념 특집호도 다시 드려다 봤고, K9SUL/ex-HL1SUL OM 이 보내준 KARL 창립 30 주년 기념호와 그무렵에 발행된 4 권의 KARL 지를 받아 자세히 읽어 보았는데, 한가지 미처 몰랐든것을 발견하였다.

KARL 초기에 KARL을 함께 만들어서 그 누구보다도 그때 사정이나 그후의 KARL 초기의 일에 밝을 초창기 Old Timer 들이, 연맹 초창기는 정혜선/강기동 OM 이 연맹을 이끌어 갔고, 이들 초창기 멤버들이 전부 미국으로, 군으로, 지방으로 내려간 후인 1958년 이후부터는, 조동인이 10여년을 혼자서 연맹을 이끌어 갔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텐데, 회고록을 통하여, 인터뷰를 통하여, 좌담회를 통하여 그당시의 얘기를 하면서, 단 한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가 한결 같이, 초기의 연맹이 누구의 노력으로 돌아 갔는지? HM1AJ 조동인이 연맹을 위하여 어떤 역활을 했는지에 대하여는 단 한마디도 안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HM1AJ 가 “연맹일 하느라고 수고했다”, “고생 했다”는 말들은 아예 기대도 못하겠고, 기껏 한말은 “조동인을 만났다” 정도가 고작이고, “조동인이 연맹 일을 했다”는 사실조차 거론하지를 않고 있다. 내가 그들에게 무슨 서운한 일을 하였기에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학교의 공부까지 뒷전으로 17 년간 연맹일에 전념한것 외에는 그들이 서운해 할 일은 하나도 한것 같지 않은데, 누군가 알려주실수 없을런지?????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는 아무리 생각 해 보아도 이해 할수가 없고, 모든 OT 들이 조동인이 일한것은 절대로 거론도 하지말자고 비밀리에 결의 대회라도 했는지? 연맹은 아무의 노력도 없이 저절로 굴러갔다고 생각하고 있거나, 연맹의 1958-1960년의 성과는 모두 초기의 자기들 노력으로 때가 되어 저절로 발생한 결과라고 착각하고 있는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나는 그래도 연맹일에 수고한 사람은 모두 수고했다고 기록을 남겼고, 내가 한 일은 누가 알아 달라고 한것은 아니었고, 단지 학교공부 마저 뒷전으로 연맹일에 전념한것이, 순전히 나 개인적으로 아마추어무선에 미쳐서 개인 무선국을 개방하겠다는 신념과, 연맹 일이 재미 있어서 또하나의 취미로 한것일 뿐이지만 , 잘했든 잘못했든 최소한의 예의로라도 “조동인이 연맹 일을 했다”는 사실 정도는 표현했어야 하는 것 아닌지???? 나도 연맹 초기에 함께 일한 모든 OMs 를 만났다는 말 이외는 그들이 연맹일을 했다는 말은 모두 싹 빼버려야 하나? hi hi.

 

KARL 60 주년 기념호에 실려있는 축사입니다.

 

다음의 좌담회에서도 지나간 30 년을 도리켜 보는 좌담회인데, 30 년 중, 10 년 이상을 혼자서 연맹을 이끌어 온 HM1AJ 에 대하여는 일언반구도 말하는 OM이 없고, 우리 고향과 집까지 바꿔 가면서 조동인씨는 약간 뒤에 우리 팀에 합류하게 됐는데의 한마디가 전부입니다..

 

 

다음은 강기동의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 KARL 의 창립 회고록에 있는 KARL 창립과 관련된 기사입니다. “KARL 창립 회고록은 약 30 페이지이지만, 그 이름과는 달리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 KARL 의 창립과 관게되는것은 다음의 2 페이지 정도이고, 나머지는 연맹과는 전혀 관계없는 개인의자서전입니다.

그런데 아래 원고를 읽다 보니 이 글을 쓸 때에는 이미 심각한 기억력 문제와 誇大忘想症증세가 있었는지? 사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소리가 여기 저기 보여서 이글의 신빙성에 많은 문제가 있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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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 KARL 의 창립 - 회고록

---한국반도체산업의 원점---

강 기 동 ( 姜起東 )

 

3.0 한국 아마추어 무선연맹 KARL 의 창립

사실, 개인국은 체신부 사무관의 말대로 신원이 확실한 사람에게는 허가 할 수 있는 것이다. 우선 HAM을 하겠다는 사람이 많아야 하겠고, 체신부와 동등한 위치에서 교섭을 할 수 있어야겠다. 그래서 아마추어무선 단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국도 ARRL 이라는 단체가 있고, 일본도 JARL 이 있다.

그러나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 혜선 씨를 빼고는 모두 나보다 나이가 아래인 학생들인 것이다. [??? 자기도 서울공대 2학년 학생이었고,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와 같은 반의 자기와 동갑인 학생들이었는데..... 연맹 창조의 중심 역활을 한 서울공대 학생들은 그와 동갑인 이동호, 김동주, 김세대, 서정욱등 그와 한반의 학생들이었는데, "나이가 아래인 학생들"이란 누구???  자기혼자 어른된것으로 착각하고 있나???]

그것도 열손가락으로 세면 몇이 남는다. 나보다 위인 정혜선 씨는 HAM QSO 경험이 있는 사회인으로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밤이면 조그마한 송신기로 CW를 배우기도 했다. 또 생전 처음 통신형 단파수신기 Hallicrafters 사의 SX28 을 중림동 정 혜선 씨집에서 구경을 하였다.

사실, 그 당시 단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것은 나 혼자였였다. [??? 天上天下唯我獨存 ??? 誇大妄想症??? 연맹을 만들자고 한것은 강기동 뿐??? 연맹 창립의 중추가 서울공대 전기과의 강기동과 한반의 학생들로, 반론을 편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다 함께 노력 하였는데…???]

정 혜선 씨는 개인사정으로 개인국을 낼 입장이 되지 못하였고, 그 다음이 배명승인데, 서울대 문리대에서 시험국 개설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배 명승 역시 학생의 신분으로 사회단체의 구성에 경험이 있을 수 없다.

몇몇 SWL에게 단체의 필요성을 강조해 보았으나, 설득하기에는 너무도 역부족이었다. [??? 몇몇 SWL이 누구??? 이동호? 김동주? 조동인? 배명승? 아무도 반대한 사람 없고, 모두가 절대 찬성이었음. 그 당시 단체의 필요성에 반론을 편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전부가 같은 생각으로 협력하여 만든 KARL 인데, 과대망상증도 너무한것 아닌가???]

그렇다고 도와주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먹고 사는 것도 힘든 때이기도 하였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는 것이었다.

나는 정 혜선 씨와 KARL 창립을 상의하였다. 높으신 분의 이름만 빌리고 일은 우리가 하는 조직을 생각하였다. 그 당시 한국에서 약전 분야라면 방송국 밖에 없었는데, 마침 기독교 방송국이 생겨서 나는 기독교 방송국을 찾아갔다. 거기에서 기술책임자인 이 덕빈 씨를 만났다 또 이 덕빈씨의 소개로 KEMCO 의 김 규한 사장, KBS 서울방송국의 이 인관 기감 등을 만나 취지를 설명하였더니 모두들 도와주시겠다고 하였다.

이 인관 씨는 우리 약전계의 원로이어서 이사장으로 모시기로 하였고, 우리 집에서 여러 번 KARL 창립 계획을 짰다. 우리가 잘 모른 문제는 이 덕빈 씨와 김 규한 씨의 도움을 받았는데, 종로 2 가 기독교 방송국 밑에 있던 '시온다방’이 모임 장소였다.

단체의 명칭은 ‘한국아마츄어무선연맹’으로 하고, KARL'이라고 영어로 부르기로 하였다. 정관은 일본 HAM 친구에게 부탁을 하여 JARL 의 정관을 입수하여, 이것을 참고로 우리 정관을 만들었다. KARL 마크도 일본 무선연맹 (JARL)과 미국 무선연맹 (ARRL)의 마크를 참고로 하여 디자인을 하였다. 창립총회 일자도 잡고, 아는 사람은 다 오라고 하였다. 창립총회의 장소는 정 혜선 씨의 주선으로 동국무선 강당을 빌렸고 총회 당일, 빈자리는 동국무선 학생으로 채웠다. 창립총회에서 이 인관 씨를 우리의 이사장으로 모시고, 간단히 총회가 끝났다.

동국무선 학생들과 회의에 수고하신 분들을 우리 집으로 모셔 와서 어머니의 수고로 식사를 대접하였다. [??? 그많은 어린 고등학교 학생들을??? HM1BX OM 말로는저녁은 서울 시청 그릴에서 먹은 기억이 납니다라고 하고, 나는 이런 초청을 받은 기억이 전혀 없는데, HM1BX와 나만 끼어 주지 않았나? 아니면 빠진 사람이 또 있나??? 나는 그집에를 1 년이상 그렇게 자주 들랑거렸어도, 지금 까지도 강기동이 부모님을 한번도 뵌 일이 없었고, 과연 그 어린 고등학교 학생들이 대부분인 50 명이 넘는 창립총회 참가자들을 어머님이 모두 초청하여 식사대접을 하셨을까.???  오직 BX와 AJ만 빼고??? 왜??? 상상하기도 힘든 있을수 없는 Another 과대망상??? 누가 이날 초대되어 강기동이 집에서 저녁대접 받았읍니까??? 그런일이 있었다는 소문도 못들었는데...] 이 날이 1955 4 20 일 이었고, 내가 자격증을 받은 지 햇수로 벌써 2 년이 지난 뒤였다.

KARL 의 창설로 일단 형식적인 조직은 생겼다. 창립총회에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왔던 곳으로 다 돌아갔다. 사실상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일할 사람이 생긴 것도 아니고 모여 앉을 장소가 생긴 것도 아니었다 연맹을 유지하려면 회원을 모집하고 회비를 거두어서 새 살림을 시작해야 한다. 앞뒤가 바뀌어져 있는 것이다. 회원 될 사람, 즉 뜻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조직을 만드는 것이 정상인데, 나는 KARL 이라는 조직을 먼저 만들어 놓고 회원 모집을 하게 되었다. [??? 독불장군 ??? KARL은 자기 혼자 만들었나??? 어떤 조직은 조직 만들어 놓고 회원 모집 안하나???] 그것도 회원 될 사람 교육을 먼저 해야 되게 되었다.

나의 할 일이 더 많아 졌다. 우선 연맹지가 발간되어야겠다. [??? 혼자서 할일이 많아젔나??? 무슨소리지요??? 그게 어느 단체에서나 당연한 일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또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과대망상??? ]

KARL 창설 이후의 이야기는 주제를 바꾸어서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KARL 초창기를 강기동이 先導하여 끌고 나간것은 사실이지만 (1954 - 1958년 7월), 강기동이와 同感하여 그를 도와준 사람들이 모두 동갑의 같은반 학생들이었는데, "天上天下唯我獨存"격으로 자기 혼자 일을 다했고 자기 이외는 전부 어린애 취급한것은 이해할수가 없다.]

3.1 아마추어무선과 나의 주위 사람들

서울로 환도해서 이 동호, 김 동주가 같은 전기과이어서 SWL로 활발히 활동을 하였고, 내가 아는 종로 3가의 삼영사에서 R388 통신형 수신기를 김 동주에게 구해주었다. R388은 그 당시 최신형 Collins제 통신장비였다. 김 동주, 이 동호는 경기고 무선반 출신으로 항상 학교에서 만났고, 주말이면 같이 등산을 하였다. 배 명승도 검정시험으로 1 년을 월반하여 서울 문리대 물리과에 입학한 경기고의 수재로 서울로 와서도 우리 집에 자주 왔었다. 배 명승의 부친이 대법관이어서 때때로 늘씬한 DODGE (우리가 도두게’라고 불렀다.) 세단차가 우리 집과 자기 집 사이를 무거운 통신장비 운반에 이용되었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내가 치안국 특수정보과에 걸려들어, 결과적으로 UC 의 무제한 면허(?)를 받아 무서운 것이 없어졌다. 이 때 정 혜선 씨를 만났고, KARL 창립을 전후해서 경기고 후배인 임 일명, 조 요성, 이 상열 OM 등 여러 명이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다. 조 동인 OM 을 만난 것도 이때[KARL 창립을 전후해서 1955년???]였던 것 같다. [??? 1954 년 여름에 만나서, 거이 1 년 가까이를, 서울공대 전기공학과 교실에서, 그리고 집으로도 많이 찾아가, 거이 매일 만나다시피 했는데…. ??? 거이 1 년 후인 1955 4 월경에 만난것 같다??? 이정도면 기억력문제가 보통 심각한 상태가 아닌듯…???] 내가 미국으로 떠날때 내 HAM 장비는 조동인에게주었다 [??? 저항 쪼각 하나도 받은일 없음. 이것도 심각한 기억력 문제 인듯???] 얼마 후에 윤 은상, 조 찬길 등도 알게 되었다. [??? 그들도 KARL 창립 멤버들인데…???]

나의 활동은 물론 학생의 신분임에도 학교 공부는 뒷전으로 하고 통신기 설계 제작이 주였고, 주말이면 등산, 시간이 나면 부속을 모으려고 청계천 훑기, 집에 놀러온 HAM FAN 들과의 잡담, 정기적으로 치안국 특수정보과 출입 또 한 번씩 생각나면 체신부 방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