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I에서의 첫 미국생활

 

1973915일에 트렁크 몇개와 미화 $800을 들고 (환전 한도액이 가족당 $500에 애들 한명에 $100) 가족들과 KMI친구들의 환송을 받으며 김포공항을 떠나, San Francisco공항에 도착하여, 생전 처음으로 외국 구경을 하는 가족들과 미국 생활이 시작되었다. 원래가 2년 계약으로, 2년 후에는 KMI로 되돌아 간다는 전제였기 때문에, 이 기간만을 위하여 집을 사거나 차를 살수가 없다고, 주택비와 (집과 가구 일체의 렌트 비용등) 자동차 비용은 (자동차 Lease, 보수비, 보험료, 연료비등) 전액을 회사가 부담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래서 이미 조그만 아파트를 회사가 렌트하여 놓고, 우선 거기서 살면서 마음에 드는 아파트를 구하라고 하였고, 차도 한대를 Lease하여 아파트에 갖다 놓았었다. 우리는 이렇게 미국을 갔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미국에 가서 모든것을 자비로 자기가 마련해야 했든 대부분의 사람들에 비하여는 아주 편하게 낫선 미국생활을 시작할수가 있었다.

차는 한국에서도 쎄미코어에서부터 운전을했고, KMI에서도 내차가 있어, 일직부터 한국 운전면허를 갖이고 있어서, 쉽게 미국 운전을 시작했는데, 미국 면허를 받으려고 California Driver's Handbook이라는것을 DMV (Department of Motor Vehicle)에서 얻어다가 보니까, 외국인이 영주가 아니고 단기간 임시로 여행으로 왔을 때에는, 자기 나라 면허증으로 운전을 해도 괜찮다고 되어 있었다. 그래도 미심쩍어, DMV에 전화를 걸고 "나는 한국에서 왔는데, 한국 면허증은 전부 한글이나 한자로만 되어있어, 너의들이 보면 알아 볼것은 사진 밖에 없고, 그것이 운전면허증인지 뭔지도 모를텐데, 이것으로 운전해도 괸찮으냐고?"고 물었드니 대답이 걸작이었다. "네가 사고도 안내고 법규 위반도 안하면, 면허증이 있건 없건 우리는 상관 안한다. 만일에 법규 위반을 하거나, 사고를 내어 우리가 단속을 해야하게 되면, DMV내에는 여러나라 사람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번역할수 있을테니, 걱정말고 운전해도 좋다"는 것이었다. "법에 써있으니 면허증이 꼭 있어야한다"가 아니고, "운전 면허는 안전 운전을 위하여 필요한것이니, 안전 운전을 하는한, 면허가 있든 없든 관계없다"는 이들의 합리적인 법해석은 정말 놀랄만 했다.

내가 AMI에서 하는일은, 그동안 KMI에서 겪었든 문제점들을 (미국인들이 한국을 잘 몰라 겪어야했든) 개선하고, 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면서 한국을 홍보하고, 매일 KMI에서 들어오는 텔렉스에서 (그때는 모든 통신을 텔렉스에 의존했고, 국제 전화가 워낙 비싸고 걸기도 힘들어, 꼭 필요할 때만 전화를 걸었다.) 그날 그날의 생산일보를 분석하여 현항을 파악하고, 텔렉스로 KMI사람들이 질문 또는 요구하는 내용의 회답을 AMI 담당자에게서 받아 KMI로 저녁때 텔렉스로 보내주고, KMI 관련 회의에 KMI를 대표하여 참석하고,..... 뭐 그런것들이었다. 이래서 미국인 한사람이 내 밑에 있었고, Two Men DepartmentKMI Support Manager라는 이름으로 일을 했는데, 그렇게 바쁘게 일해야하는 직책은 아니었다.

이러면서 제일 먼저 손댄것이 Invoice문제였다. AMI에서 원자제를 보내오는데, Invoice의 단가x수량의 간단한 곱셈이 항목 액수와 항상 틀려, 세관에서 언제나 말썽을 이르켰고, 할수 없이 백지 Invoice AMI에서 대량으로 얻어다가 한국에서 Invoice를 만드는 일 까지도 했었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해결 할수 없을까하고 제일 먼저 손을 댔는데, 이것이 그렇게 생각 같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Invoice는 출하 전에 꼭 내 검산과 서명을 받은 후에 보내라고 하고, 항목 마다 전부를 계산기를 뚜드려 검산을 했는데, Invoice 한번에 너댓개는 으례 미스가 나있다. 이것을 통계를 내어, 시정 요청을 하면서, 출하담당 Manager, Director 부사장에게 까지 사본을 보내어 온동네가 시끄럽게 떠들었지만, 가서 얘기를하면 "아 미안하다. 시정하겠다"고 하고는 하나도 시정이 안되었다.

한 반년을 싸우다가 결국 내가 백기를 들고 말았는데, 반년을 지나면서 가만히 살펴보니, 그도 그럴수밖에 없다는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선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Invoice를 만드는 사람이 대학 출신의 경리과 직원인것이 통례인데, 미국에서 대학 출신에게 Invoice 만들라고 하면, 월급을 배로 준데도 싫다고 모두 도망 갈것이고, Invoice를 만드는것은 웃통 훌덕 벗고 머릿띠 둘르고 물건을 괘짝에 넣고 포장하는 국민하교 정도나 나왔을 친구가 Invoice를 만들고 있으니, 미스가 안나면 이상할 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한국 세관은 수입되는 모든것을 전부 검사하지만, 미국 세관은 워낙 수입물량이 많다 보니까, 전수 검사를 하려면 엄청난 세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만 무작위 쌤플링으로 검사하고 대부분은 서류 심사로 끝내서 세관 검사 없이 통관된다는것을 알게 되었는데, 자기네 나라의 통관이 이렇게 쉬우니까, 한국 세관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이 친구들은 전혀 이해하지도 못하고 실감도 나지 않아, 문제로 생각 조차 않는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의 세금 제도도 같은데, 모든 국민이 세금보고서는 해마다 내지만, 그중 세무서가 자세히 들여다보는 보고서는 불과 몇% 뿐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다가 한번 탈세 사실이 밝혀지면 10년을 두고 해마다 검사를 받게 되어, 모든 영수증을 제출하여야 하고, 보통 곤욕을 치르는것이 아니다. 이런것들이 신용에 바탕을 둔 미국 사회에서, 서로 믿고 사는 사회이기 때문에 있을수 있다는것을 알게되었다.

어쨋든 이것이 미국의 실정이니, 이것은 내힘으로 뿐만이 아니고, AMI 사장의 힘으로도 어쩔수 없겠다는것을 반년이나 지나서야 겨우 깨닫고, KMI에 이것은 시정 불가능이니 한국에서 세관에 뇌물로 해결하든 사문서 위조로 해결하든 재주것 해보라고 통보하는것으로 결말을 짓고 말았고, 이것은 내가 손대서 중간에서 기권한 몇가지 안되는 일들 중의 하나였다.

한편 가족들은 오자마자 아파트를 보러 다녀, 2주 후에는 조금 더 크고 학군이 좋은 아파트로 이사를 하였고, (미국에서도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들은, 특히 동양인이, 학군을 따지고, 학군이 좋은 동네는 집값도 비싸다.) 아이들은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면서 학교에 가기 시작하였다. 다행이 미국은 진도가 한국 보다 훨신 늦어, 일년 쯤 학교를 헛다녀도 그런대로 따라갈것 같았는데, 반년쯤 지나니까 영어로 서로 얘기하기 시작하드니, 일년이 지나니까 나보다도 영어를 잘하여, 역시 외국어는 어릴때 배워야하는구나 하는것을 실감하였다.

그러면서 미국 국민학교 선생님들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느꼈는데, 미국의 국민학교 선생님들은 할머니까지는 아니라도 나이든 아주머니들이 많고, 아이들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들이어서, 영어를 못하는 아이들도 잘 돌보아 주었고, 교장 선생님도 교장의 위엄은 하나도 느낄수 없고, 허름한 옷을 입고 학교안을 돌아다니면서 애들과 얘기하고 놀기도하고, 마당에 떨어진 쓰레기도 줍고 하는것을 보고, 한국의 교장과는 정말 다르다는것을 느꼈다.

어짜피 미국에 2년 밖에 안있을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영어를 빨리 배우도록 TV보는것을 방치해 두기도 했고, 나도 점점 영어로 애들과 얘기를 하기 시작하다보니, 얼마후에는 오히려 서로 영어가 습관화 되고 말아서, 지금도 애들과는 영어로 얘기한다.

그러면서 우선 신기한것도 많았지만, California는 특히 구경할만한 곳이 많고, 미국의 경치 좋은곳은 전부 서부에 몰려있어 (동부에는 인공적인 도시를 뺀다면 나이아가라 밖에 없다.), 이런곳들을 2년내에 구경은 다 해야겠고, 그러면서 내가 운전을 워낙 좋아하고 "ENJOY TODAY"가 생활신조이다 보니까, 처음에는 한두시간 거리의 San Francisco, Monterey, Lake Tahoe, Yosemite등의 당일 치기가 대부분이었지만, 점점 행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한국과 달리 이틀씩이나 되는 주말을 이용하여 수 없이 돌아다녔다. 특히 Lake Tahoe Yosemite는 우리집에서 4시간 반쯤 걸리는데, 워낙 경치가 좋은 명승지라, KMI출장자나 우리집을 찾아오는 방문객을 데리고, 당일 치기로 수십번은 다녀왔을것 같다.

처음에는 내혼자 운전을 다 했지만, "마누라를 직접 운전을 가르치려면 이혼을 각오하라"고 옆에서들 충고했으나, 한달 이상 걸려 집 근처 대학의 주차장에가서 운전을 가르쳐, 집사람도 면허를 딴 후에는 조금 편해졌다. 처음 면허를 받은 그날로 집에 오는길에 고속도로로 몰고 들어가게 하여, 진땀을 빼게 했지만, 이것도 어떤 할머니가 평생을 고속도로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소리를 듣고, 그런 겁을 없애 주려 고의적으로 몰고 들어갔고, 한번은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가면서 운전을 시켰드니, 핸들을 너무 꽉 잡아 팔에서 쥐가 난 일도 있었다.

이렇게 우리 가족들만도 수없이 돌아다녔지만, KMI에서 출장오는 사람들이 많아, 이들을 미국 구경 시켜줘야겠다고, 회사 경비로 어지간히 돌아다녔다. 몇일씩 회사 빼먹고 간일은 비일비재였고, KMI의 간부가 오면 일주일씩 멀리는 Yellowstone Park, Las Vegas, Grand Canyon까지도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니까 이제는 관광 안내자로서도 손색이 없게 되었고, 은퇴하면 관광 안내로 돈벌어야겠다고 농담을 할정도가 되었다.

미국에 가기 직전에 일본의 문예춘추라는 잡지에서 어떤 일본인의 글을 읽은 일이 있는데, 미국에 거이 10년을 산 후에, 어떤 미국인 친구가 "너 자동차로 미국을 횡단해 본 일 있느냐?"고 물어, 없다고 했드니, "그러면 너는 아직 미국을 모른다."고 하여, 큰 마음 먹고 New York에서 San Francisco를 자동차를 몰고 횡단해 보니, 정말로 미국이 얼마나 넓은 나라인지?, 미국의 저력을 알겠드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미국에 가서 조금 자리가 잡히면서, AAA라고 (American Automobile Association) 회원이 되면 모든 지도와 여행 안내서를 공으로 주는 협회에 가입하여, 미국을 일주하는 자동차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하였다. 여행 안내서를 있는데로 집어다가 갈만한 곳을 고르고, 지도를 갖어다가 여행 경로를 계획하고, 일년이 넘게 계획한것이 75년 여름에 실천한 "미국일주계획"으로, 매일 몇시에 어디서 떠나서 몇시면 어디에 도착하고, 거기서는 몇시간동안 무엇을하고, 호텔은 어디서 자고….

그리고 나서 이것을 실천으로 옮겨야겠는데, 우선 다섯명이 장기간의 여행을 하려면 자동차가 승용차로는 안되겠고, Station Wagon이 편리할것 같았다. 그래서 미국온지 1년후에는 AMI에 새차를 Lease 하겠다고 하여, Station Wagon으로 바꿨다. 어짜피 자동차 비용은 모든것을 회사가 내주고 있으니 문제가 아닌데, 그외의 5주간을 회사를 빠지는것도 문제겠고, 호텔비등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게 생겼기에, 생산담당 부사장인 보스를 찾아가 협상을 했다.

"미국회사가 사원을 외국에 장기 파견하면, 일년에 한번씩 Home Leave라하여 전 가족의 항공료를 부담하여 미국에 왔다 가게 하는데 AMI에도 그런 규정이 있느냐?" - Yes.

"그러면 우리도 미국온지 2년이 가까워지는데, 이런 해택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 OK

"그럴려면 가족 1인당 항공료가 $1,200쯤 드니까 (그때는 요새같은 활인 요금이 별로 없었다.) 전가족이 $6,000.은 들텐데, 사실은 이런 이유로 미국일주여행을 하고 싶어서 얘기하는건데, 이돈을 반타작하여 $3,000 AMI가 갖고, 반만 현금으로 줄수 없겠느냐?" - OK

"AMI 사규에 의하면 종업원이 일년에 20일 까지도 휴가를 받을수 있는데, KMI일을 하다 보니까 놀 여가가 없어 3년 반 근무에 휴가라고는 가본일이 없다. 이것을 보상하는 뜻으로 25일만 (근무일 25일이면 5) 휴가를 받을수 없겠느냐?" - OK

이래서 내돈 한푼도 안든 미국일주여행이 시작되었다 (1975 6/14 - 7/18). 이 여행의 자세한 얘기는 그것만으로도 책한권이 되겠으니까, 여기서는 생략하지만, 27개주에 걸처 거이 지구를 반바퀴 도는 거리인 11,200마일을 여행하면서 배운것은, 미국이 정말 넓다는것 (San Francisco에서 New York까지가 3,000마일, 서울에서 Singapore거리이고, 자동차로 교대 운전 하면서 24시간 쉬지 않고 운전해서 3일 소요), 미국이 그렇게 개척했다 하여도 그넓은 땅의 95%가 아직도 사람의 손길이 안간 야생 그대로라는것, 옛날 서부 활극 시대에 보스톤에서 금광을 찾아 수 많은 개척자들이 포장마차를 끌고 일년이 넘게 걸려 San Francisco까지 가면서, 특히 길도 없는 그 높은 Rocky산맥이나 Sierra산맥을 어떻게 넘었겠느냐? 더구나 끝 없이 인디안들의 습격을 받아 반이상이 죽는 수가 허다 했는데, 그들의 개척 정신에는 감탄할수 밖에 없었고, 만일에 200년전 한국 사람을 몽땅 날라다 보스톤에 떨어뜨려 놨었다면, 지금 어디까지 뻗어 나갔을것인가? 어쩌면 Massachusetts주도 못 벗어 났을것 아닌가? 이렇게 목슴 걸고 온갓 고생을 감내한 조상이 있었기에 오늘의 미국이 있는것이지, 한국에서 흔히 얘기하듯 미국은 신의 은총를 받은 나라라고, 거저 생긴것처럼 얘기하는것은 말도 안되는 말이라는것을 정말로 실감할수 있었다. 이런 개척자 없이 아메리칸 인디안들만 오늘까지 살았다면, 아무리 지하자원이 많다는 이나라도, 결국 멕시코만도 못한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이렇게 미국의 국립 공원이나 명승지는 거이다 찾아 다녔고, 일가 친척과 친구집도 다 찾아가서, 오래만에 반갑게 재회를 갖었었다. 그 덕택에 나도 현장 실습을 많이 하였지만, 특히 아이들에게 공부가 많이 된것 같았다. 그러나 AMI가 함참 전성기였고, KMI성과 덕택에 AMI 고위층이 특혜를 베풀어 줘서 이것이 가능했지, 우선 5주간의 휴가라는것이 쉽지 않고, 차가 새차여야 하고, 돈도 많이 들고 (그 때의 $3,000에 자동치 비용까지 합치면 지금은 만불 이상이 들것이 틀림 없다.), 게다가 애들이 너무 어리면 애들이 고생이고, 나이가 들어도 국민학교일 때야지, 중학교에만 들어가도, 저의들의 생활이 생기면서, 부모와 이렇게 여행하는것을 그렇게 달갑게 생각지 않기 때문에, 가족 구성이 시기적으로도 가장 알맞게 다녀왔고, 이런 모든 여건이 맞아 준다는것이 여간 여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도 크나 큰 행운이라고 할수 밖에 없다고 생각되며, 이것은 내 일생 최대의 여행이었고, ENJOY TODAY나 생각하는 나같은 사람이 아니고는, 회사 일 팽개치고 이런 짓한 미국인도 몇 안될것으로 생각된다. (그후에 또 Canada 횡단 여행을 계획한 일이 있는데, 애들이 안가겠다고하여 기권했다.)

이 여행 이외에도, 한번은 KMI에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하와이에 둘러, 미국에 있는 집사람도 그리로 오라고 하여, 둘이서 몇일간 하와이에서 만나서 집사람 하와이 구경을 시켜주고 함께 돌아오기도 했다.

그후에 우리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셔서 어쩔수 없고, 장인 장모나 모셔 오자고하여, 두분을 초청하여 약 두주일간 서부 구경을 잘 시켜드렸고, 어쨋든 미국에서의 첫생활 2년반은 여행이 내 생활의 거이 반은 차지하였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잘도 돌아다녔다. (회사일이야 매일 똑같은 일의 반복이었고, 특별한 프로젝트가 있었든것도 아니어서 특기할 사항은 없었고...)

한편 1975 3-4월경,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가까워 졌을 때에, AMI가 대만에 제2의 조립공장을 세워야겠는데, AMI에는 조립공장 경영에 경험있는사람도 없고, 네가 적임자니 가달라고 하여,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1976년에 대만으로 가게 되어, 일단 이런 생활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