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l0hq@hanmail.net
DS2HTR
김형수 이사장
님
ds1olh@hanmail.net.
DS1OLH
유부원 OM
행사도
많고
방대한
조직인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을
이끌어
나가느라
매일
수
고가
많으실것으로
사료됩니다.
이번에
발행된
KARL지
특별호를
받아보고,
우선
눈에
뜨인
시정되어야
할 몇
가지를
지적하고자
하며,
이미 발행된
KARL지를
수정할수는
없고,
앞으로
언
제인가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의
정사(正史)가
쓰여질
기회가 온다면
반영하여
주시기 바라면서
알려
드리고자 하며,
KARL지의
다음호에
정정기사로
실려질 수
있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
아마추어무선
법규 초안 작성
및
체신부
제출
-
한국
아마추어무선
법규
초안이
연맹에서
작성되어
체신부에
제출
된것은,
1959년
초기로
(2/25/59),
체신부의
아마추어무선
개방
예고가
나오면서,
이 제 우리나라에도
아무추어무선을
관리할
법규가
꼭
필요하게
되었으나,
담당 부서인
체신부
전파관리국
담당자들이
아마추어무선에
대한
이해가
절대로
부
족하여
법규를
만들기는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체신부에서
Ham 개방을
예고한 10월 말 이후에,
연말이 가까워서,
연맹에서 법규 초안을
만들기에 착
수하여,
다음해인
1959년
2월에야
제출 했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법규 초안이
착수된것은
강기동OM이
이미 미국으로 떠난지
여러
달이
지난 후였으므로
강
OM의
참가는 시기적으로
불가능 했고,
내
기억에도 이
초안
작성을 함께 일한
기억은
없는데,
어디서 나온
정보
인지는 몰라도,
KARL지
특집호 76페
이지에는
"HM1AJ 조동인은
강기동등과
함게 ......
무선법규 초안을
작성하였
고....."라고
되어 있읍니다.
이
무선법규
초안은,
HM1AJ가
몇달에
걸처
주로
미국과
일본의
아마추어무선제도를
공부하고, 영국, 독일의
아마추어무선제도 를
참고로
하여,
혼자서 작성한 후에,
여러
아마추어들의 Review를
받은후 체
신부에
제출한것으로, 여기서
"강기동"의
이름은 삭제
되어야 합니다.
2)
HM9A/p에
대한 소개.
HM9A/p는
처음부터
제주 Expedition을
위하여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허가된
이동무선국이고,
KARL지는
전국민을 위한
홍보
보다는 일차적으로
KARL
회 원들이
읽는 ham을
위한
책입니다.
따라서 국위선양을
위한 홍보
보다는
회
원들의 최초의 이동무선국으로
한국 최초의
Expedition이었든
제주Expedition이 강조
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대
KARL지
특집호에는,
정치적으로
국위 선양에
크게 공헌했다는
이유
때문인듯, 독도
Expedition만
크게 다루어지고,
제주 Expedition은
다
늦게
몇줄
정도로
잘
보이지도
않게
다루어지고 있읍니다.
이것은 주객이
전도
된
것으로,
한국
최초의
Expedition인
HM9A/p의
제주 Expedition은,
아무리
독도원정이 더
큰
정치
적인
가치가
있었다 하드라도,
독도 Expedition 보다는
더
크게
보도
되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정사(正史)를
쓸
때에는
이사실을
잊지마시고,
독 도
보다는
한국
최초의
이동
운영이었든
제주도
Expedition이
더
크게
소개되
어야
하고,
HM1AS
이광수 OM의
독도
원정기 보다는
HM1AA
조요성 OM의
제주도
원정기가
실렸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HM1AA
조요성 OM의
제주도
원정기는
1960년
9/10월
합병호에
있음.)
당시의 체신부의
입장은 사회가 그 런
사회였기에,
이동국 허가를
고정국
보다 훨씬
주저했으며,
연맹이 이동국
허가를
받는데에
고생이
많았읍니다.
3)
아마추어
무선의
개방 공로자
한국아마추어무선은
1959년6월에
첫 아마추어무선국인
HL9TA가
KARL
본 부국으로
가허가
되고, 8월에
본허가가
나와서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정혜선/
강기동 OMs가
KARL을
떠난지 만 1년
이상이 지난
후의
일이고,
개인 아마
추어무선은
그보다도
다시 1년이
더
걸려,
1960년
9월초에
HM1AA
- HM1AH가 허가되어,
이것은
정/강
OMs가 연맹을
떠난지 2년 반 후의
일입니다.
정OM/강OM이 KARL
재임중에
한국의
아마추어무선 개방을
위하여
노력한
것은
부인
할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들의 재임중에는
아무
성과도 못올리고
떠났고,
그후에는 연맹과 연락이
두절되어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였읍니다.
따라서 한국에서
아마추어무선이
개방된것은, 비록 어느
한 두
사람 만의 단
기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진것은
아니고,
5년이상을
여러
사람이
계속
노력한
아마추어무선연맹의
단체로서의
힘이 가장 컸었지만, 결국 개방으로 이끈 최 대
공로자는, 역시
위에서는 당시
공보처
방송관리국의 기감으로
KBS의
최고 기술책임자였든
이인관 연맹
이사장님의
체신부의 상위
공무원
상대의 정치적 인
노력과,
당시 총무이사로
실무선에서
체신부 전파관리국 공무원들을 거이
매주
찾아가서
설득하고 열심히
노력한
HM1AJ 총무이사
역할이 절대적이
었든것 만은 아무도 부인할수
없을것입니다.
그당시에
아무추어무선연맹을
가장
가까이서 보아온 HM1AA, HM1AB, HM1AC, HM1AD,
, HM1AX, HM1BB, HM1BI, HM1CC
(대부분
서울공대의
LCR
Club
멤버들)등
초기
아마추어의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같은
답이
나오겠지만,
불행이도 이들이
전부
미국에 와
있어,
이 번 KARL지
특집호
제작에는
전혀
정보를
제공할수
없었든것이
이런 오보를 일으키게된 큰
원인중의 하나가 아니었든가 싶습니다.
이들
중 몇명과는
DS1OLH
OM이
전화로
인터뷰를
한것
같지만,
"아마추어무
선
개방에
가장
공헌한
사람이
누구냐?"고
직설적으로
묻지
않은 한 아무도
이런
사실을
의제로
거론하지도
않았겠고,
나와의
전화
통화
중에도 이것이 주제가
되어
얘기한
기억은
없읍니다.
우리들로서는
누구나
모두
인정하고
있 었든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라 평소에 얘기할
필요도
없었읍니다.
현제
한국에
있는
당시의
사람인
HM1BX도
1958년
-
1990년의
가장 중요했
든
기간중
계속
경남
진해에
있었기에
자세한
내용은
모르고
있었고,
이인관 이사장님이
아직
생존하셨드라면,
정확한 정보를
제공 해
주실수 있었을텐데,
불행이도
타계하시어
아무
도움도 못
주셨을것이고, 김규한 부이사장님이 비
교적 알고
계셨겠지만,
총회를 할때에
사회를
하시고,
법률적 문제가
있을
때 만
찾아갔었기
때문에,
역시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시지
않았나
싶고,
그외는
아마추어무선연맹의
진행을 가까이에서
보고 지난
OM이
하나도 없는것
같습
니다.
내가
연맹
총무로서
무슨
일을
했느냐?
하는것은
KARL지
1959년
10월호
-
12월호에
실었든 "KARL
1954년
부터
1959년
까지"의
글과 (2005년
4월호
에
다시
계제),
2001년
7월
- 2002년 3월호에
연제
했든 "AJ의
KARL 이야 기"를
제대로
읽어
보았으면
쉽게
파악할수
있었을텐데
(이두글은
나의
web
site인
www.thechofamily.com에
올라와
있어
지금도 언제나
읽을수
있음.)
이러한
내 글들의
내용은, 왜
그렇게
됐는지는
전혀
알수
없지만,
이번 KARL
지 특별호
제작에서는 완전히 무시된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처음
3년간 KARL 창립에 공헌을 했고,
아마추어무선
개방을
위해
노력했다고는
하나,
결국 결과는
내지
못하고 연맹을
떠난 정혜선
OM, 강기동OM
만이
아마추어무선
개방을
위하여
노력한것
같이
묘사되고,
아마추어무
선의
개방이 마치 그들만의
노력으로
때가
되어
저절로
이루어진것
처럼
표현
한
KARL지
특별호의
기사는
전적으로 잘못되었고,
그때
당시의
체신부의
사
정이
지속적인
연맹의
노력
없이
때가
되어
저절로
개방될
형편이
아니었으며,
반듯이
수정되어야 할 절대적인 오류임을 지적할수 밖에
없읍니다.
그러나
HM1AJ가
아마추어무선의
최대 공로자라고
선전해야한다는
얘기는 아 닙니다.
어떻게
되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전혀 이해할수가
없지만,
공이
있었
건 없었건,
특히
아마추어무선이
개방되든
1959
-
1960 의
2년간을
포함하 여 누계
15년간,
HM1AJ가
연맹의
총무로
연맹
일을
하였다는
사실조차
전 혀
기록하지
않고
있어,
정혜선
OM과
강기동
OM에게
활애된 지면과
비슷하
게 1-2
페이지 정도를
활애하여 HM1AJ의
총무이사로서의 활약상을
소개하면
서,
아마추어무선의
개방이 그때에 이루어젔음을 명기하는 정도의
기사는 계 제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나
개인의
입장만
생각한다면
이제
나이
도
고령이라
남은
여생도
얼마
안남았고,
앞으로 한국을
방문
하거나
한국의
ham들을
만날 기회도
없다고
생각되므로,
KARL지에
무어라고
쓰여젔건
문제 될일은
아니지만,
앞으로
언젠가
한국 아마추어무선연맹의
역사가 쓰여질 기
회가
온다면,
역사만은
사실에
입각하여 사실이
사실대로
왜곡 없이
쓰여진
正史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4) HM1AM
65페이지의
HM1AM
사진설명
"임정혁
YL이
HL9TA
SHACK에서
교신하는
모습과
허가장,
TV방송에
출연한
모습을
담은
사진
입니다"
는
잘못된
부분이
있읍니다.
Shack는
HL9TA
SHACK이
아니라 HM1AM의
집에
있었든 HM1AM의
shack이고,
"허가장"은
없고,
훗날
결혼후에
만들어진 HM1AJ와
의 공동 QSL
card가 맨
밑에
있읍니다.
5) HM5AT
김기환
이것은
HM1AT
김세환
OM으로
부터
알려
온것인데,
사소한 미스이기는
하
지만
159페이지의
"김기환"은
"김세환"의
오기이고,
당시
부산에 있었기
때문
에
HM5AT로
표기한것
같으나,
사진의
shack는
서울에
있을때의
HM1AT의
shack이고,
공식적으로 Call
Sign을 HM5AT로
바꾼일은
없으므로
"HM1AT
김세환"으로 표기하는것이 옳습니다.
끝으로
이것도
사소한
오류이지만,
여기
저기에
KARL의
"환갑"을
축하한다고
되어
있는데,
"환갑"은 만59세이고,
만60년은
"진갑"입니다. 이것은 12월31일
에
출생한
아기가
다음날에
2살이되는 한국
특유의
나이
계산법
때문인데,
많 은
사람이,
특히 요새 젊은
사람들이 많이
범하는 실수
입니다.
이상 참고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한 때
15년간
연맹을
이끌어
나갔든
경험이
있어 대략
추정은
합니다만, 그
때에
비하여
엄청나게
비대해지고,
각종 행사가
전국적으로
끊임 없는
연맹을 이끌어 나가느라,
정말
수고가
많으시리라
생각됩니다.
계속 수고해
주시고,
KARL의 무궁한
발전을 멀리서
기원 합니다.
Very Best 73
!! de
KE6AJ/ex-HM1AJ
Received No
Response
===============================
From:
Dong-In Cho
To:
Boo-Won Yoo (DS1OLH)
Sent:
Sunday, May 17, 2015 4:48 AM
Subject:
KARL지
특집호 관련.
DS1DLH OM,
KARL지
60년
기념 특집을 만드느라 오랜 기간 엄청난 수고를 하신것아 역력히 나타나 감탄을 금할 갈이 없었읍니다.
어떻게 그 많은 자료들을 뫃았는지?
설명이 없어도 그 노력과 고생은 엄청 컸으리라 쉽게 알수 있었읍니다.
앞으로 언젠가
KARL 60년사
또는
70년사의
역사가 쓰여진다면,
이책의 자료는 막대한 공헌을 할것이 틀림 없다고 믿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개인의 불만 때문에
OM의
기분이 많이 상했으리라고 믿어지며,
나
역시
10여년을
연맹의 아마추어무선 개방과 기초확립에 고전분투하였기에,
성심껏 일한 노력만큼 많은 실망을 할수 밖에 없었읍니다.
문제는 특집호에 내 사진은 그 어느 누구 사진보다 많이 계제되었는데
(연맹일을
많이 하다보니 자연히 약방 감초 마냥 모든 행사에 참석했고,
이번에 아마 누구보다도 많은 사진을 제공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든 사진들이 간단한 사진설명으로
"이것이
HM1AJ이다"라는
설명 이외에는 아무 말도 없는 반면에,
정혜선/강기동의
사진 설명에는 마치 그들만이 모든
KARL일과
아마추어무선 개방을 위한 노력을 한것처럼 써 있는것이 크게 내 감정을 거슬릴수 밖에 없었읍니다.
그들은 초기
3년만
일하다가 아무 성과도 올리지 못하고
KARL을
떠난후에는 전혀 도움이 안되었었는데....
(그래도
나는 글을 쓸 때마다 그들의 노력을 명시 했읍니다.)
DS1OLH OM은
우리가 활약하든 시절에는
HM ham계에
있지도 않았을것으로 생각되고,
따라서 나에 대해서나 정혜선/강기동에
대한 선입감이 전혀 없었을 터인데,
왜
어떻게 해서 이런 결과를 초래했는지?
정말 이해 할수가 없었읍니다.
한가지 추정해 본것은 내가 연맹일로 활약할 때에 내 주변에서 나를 도와주고 실제로 경험한 초기의
HM ham들
(HM1AA, HM1AB, HM1AC, HM1AD, HM1AE, HM1AG, HHM1AM, HM1AX, HM1AY, HM1BB,
HM1BI, HM1CC
등등 -
주로 서울 공대의
LCR Club member들)은
모두가 미국에 와 있어서 당시의 실정을
OM에게
설명할 기회가 없었으나,
정혜선,
서정욱,
김동주등 정혜선/강기동과
가까운 사람들이 한국에 많이 남아 있어,
편향된 정보의 입력이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보았읍니다.
(이것은
단순히 나의 추측입니다.)
더구나 모든 일을 제일 자세히 아시는 이인관 초대 이사장님도 돌아가셔서,
OM이
공정한 정보를 얻는데에 많은 지장을 초래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았읍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드라도,
내가 쓴 글이
KARL지에
남아있어
OM도
그것을 모두 읽어 보았을텐데,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지?
나로서는 아직도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의문입니다.
나하고 접촉도 없든
OM이
나에게 무슨 감정이 있어 고의적으로 했을
이유도 없다고 믿어지고,
그동안 서로 많은
e-mail을
교환하면서 사이좋게 협조를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무심코 한 단순한 실수인지?
아니면 무슨 이유가 있는지,
한번 해명을 해주시고,
이
어색한 관계를 정산하는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 이글을 씁니다.
공연히 이글이 관계를 더 자극한 결과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경탄합니다만,
특집호에 수록된 그 방대한 데이터들은 나의 예상을 훨신 초월하는 엄청난 것이었읍니다.
다시 한번 축하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Very
Best 73!! de ex-HM1AJ
Received No Respons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