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MI가 Motorola에 매각되어
공장을 Motorola에 인계한후에도, Motorola로부터 최종으로
매각대금 전액을 받을 때 까지 3개월이 걸렸고, 이 수금이
끝날 때 까지는 대만에 있어야해서, 호텔생활을 3개월이나
했었다. 그동안에 AMI가 어딘가에 다시 제2공장을
세워야겠는데, 어디가 제일 좋을런지, 후보지선정을 위한
조사를 하라는 본사 지시를 받고, 여기 보이는 지도의
여러나라를 방문하며 조사활동을 벌렸다. 빨간선은
우리내외가 함께 다닌 곳으로, Jane은 Bangkok을 끝으로
대만으로 먼저 돌아갔고 (애들 셋만 다이중호텔에
남겨두고 왔었기 때문에 - TMI 친구들이 계속 매일 애들의
뒷바라지는 친절하게 잘 해줬지만), 그다음의 인도와
Mauritius섬은 내혼자 갔었다.

첫 기착지는 홍콩이었지만, 이곳은 너무나 잘알려져 있었고, 인건비가 너무 비싸 아예 후보지로는 생각도 안한곳이었고, 대만에서 가장
가까운곳이어서 지난길에 들른 정도였다. 대개 가는곳 마다 3-4일씩 체재하면서, 하루는 그곳에 있는 미국회사의 미국인들을 만나 얘기를
들었고, 다음날은 정부관리와 만나 그들의 외국인 투자에 대한 정책얘기를 들었고, 3일째는 관광을 하면서 그나라를 둘러보는식으로 방문을
하였었다.

다음으로 간곳이 Philippine의
Manila로, 이나라는 미국치하에 70여년을 있었으므로 모든사람이 영어를 자유롭게 한다는것이 특징으로, 미국계회사가 들어오기에는 가장
편리한 나라였다.
특히 교육수준이 높아, 여공의 70%가 대졸이고, 택시 운전사도 대졸이 많았다. 사진에 보이는 Bamboo
Dance(대나무춤?)는 이나라의 유명한 민속춤으로, 사진에서 Jane이 끌려나가 무용수와 함께 이 춤을 추고있다. Philippine은
미국이전에 스페인영토로 몇백년을 있었으므로, 이곳은 스페인, 미국, 그리고 가까운 중국 과 자기네의 토속문화가 전부 뒤섞여, 특히
음식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어서, 맛있는 음식이 많았고 (특히 섬나라라 해산물), 한가지 딴나라에 없는 특이한점은 식당마다 문앞에 권총을
찬 경비원이 안내를 겸하고 있었다.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마카티는 마닐라의 신개발지역으로, 미국의 어느도시에 온것같은 착각을할정도로
완전한 미국식 도시이지만, 그옆의 구도시는 전형적인 Philippine도시로 길도 좁고 빈곤이 어디서나 보이는 도시였다.

싱가폴은 이광요수상이 거이 기적을 일으켜 놓은
국가로, 한국을 포함하여 어느나라에서나, 그나라에 파견되어 있는 미국인 Manager들은 그나라의 나쁜점을 많이 얘기하는데,
싱가폴에서만은, 그곳에 상주하고 있는 미국인들도 싱가폴정부를 극구 찬양하고 있었고, 택시를 타도 택시운전사들이 이광요수상을 침이 말으게
칭찬하고있어, 30여년간의 장기집권에 강력한 독재에 가까운 정치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이와는 달리 하도 정치를 잘하니까 경쟁할 사람이
없어서) 전국민이 지극히 존경하는 수상이었다. 나라가 작아서 정치하기가 쉽다는 사람도 있지만, 제일 긴쪽의 거리가 60km밖에 안되고
수백만명의 인구 밖에 안되는 작은 나라로, 자원이라고는 극소량의 고무가 생산되는것 밖에 없는데, 큰나라들도 따라올수 없는 대경제국으로
만든것은, 내개인 생각으로는 처칠보다도 훌륭한 정치지도자라고 생각한다. 중국인이 거이 전부인 이나라의 공식언어가 영어라는것도 놀랍고,
무성한 열대나무속에, 껌을 갖이고만 있다가도 발각되면 많은 벌금을 물어야하는 이나라는, 청결과는 인연이 먼 중국인들의 의식을 완전히
바꿔놓은, 문자그대로의 아름다운 전원도시(자칭 Garden City)이다. 공업단지를 가보았는데, 우선 사무실건물이 위에 타원내의 사진과
같이 색다르고, 공단 전체가 나무에 파뭍여, 마치 공원에 온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진 오른쪽에 있는 높은건물은 건축학상 특이한 공법으로
지은 건물로, 양쪽의 두기둥과 두기둥을 연결하는 거대한 빔을 세우고, 세개의 사무실건물 (유리창이 있는 부분)을 여기에 매달아 놓은
건물로, 밑에서 받치고 있는것이 아니고 위에서 매달려있는 건물이다.

싱가폴에서 자가르타를 가느라고 인도네시아
영사관에 가서 Visa를 내달랬드니, 그때 내가 갖고있든 한국여권의 유효기간이 6개월 미만이라 안된다고 연장해오라고 했다. 그래서
싱가폴의 한국영사관에 갔드니, 내여권은 San Francisco에서 발행한 교포여권이라 San Francisco에서만 연장해줄수 있단다.
다시 인도네시아 영사관에 가서 사정얘기를 하고 좀 봐달랬드니, 한국인이 한국내 문제를 왜 우리보고 해결해 달라느냐고 안된단다. 그말도
일리가 있어, 할수 없이 또 한국영사관에를 가서, 지금 어떻게 San Francisco를 갔다 오느냐고 사정했으나, 그것은 댁의
사정이고, 규정상 안된단다. 화가 나길래, "내가 한국사람이라는것이 창피하다"고 고함을 치고 호텔로 와서 생각하니 회사일을 포기할수도
없고 난감하였다. 할수없이 서울의 KMI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그때 형님이 청와대 의전실에 계셨는데, 좀 부탁을 해달라고 했드니,
얼마후에 전화가와서 영사관에 가보라고 했다. 다시 영사관에를 갔드니, 그렇게 달라질수가 있을까? 영사방으로 안내하드니, 칙사대접에,
그자리에서 두말없이 연장도장을 찍어주었다. 역시 한국은 빽이 있어야 되는 나라였다.
인도네시아에는 당시
훼어차일드의 반도체공장이 있었는데, 서울의 쎄미코어에서 나는 생산기술부장, 그는 생산부장으로 가장 친하게 함께 일하든 이영일씨가, 그리로
전근이 되어 나가 있어, 훼어차일드 공장을 갔었는데, 지금은 판이하게 달라졌지만, 그때만해도, 인도네시아는 희안한 나라였다. 공장안에
전화라고는 한대가 수위실에만 있어, 왜 사장실에도 전화가 없느냐니까, 어짜피 안걸리는 전화 있으면 무엇하느냐는 것이었고, 우편은 배달부가
비가오거나 고달프면 전부 태워버리고 배달을 안해줘, 자가르타 중앙우체국의 사서함을 쓰면서 운전수가 매일 찾아오고 있었다. 또 아침
출근때에 비가오면 아주 회사문을 닫아버리는데, 출근 때에 여공들이 비를 맞아 옷이 젖어서 공장안에 들어오면, 반도체공장이라 실내온도가
항상 섭시25도에 맞추어져있어 써늘하기 때문에, 약한 체질에 감기가 걸려서 여러날 출근 못하는 여공이 부지기수라 아예 문을 닫아버린다고
했었다. 그뿐아니라, 월급을 주면, 워낙 낙천적으로 앞일은 걱정을 안하는 국민이라, 그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한동안 출근을 안하는 여공이
많단다. 참 재미있는 나라였다. 위의 사진은 민속촌에서 이영일씨 부인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말레이지마도 인도같이 오래동안 영국의
식민지였으나 영국에게서 많은것을 배워 잘 소화시킨 나라로 보였다. 이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민족문제로, 80%의 대다수는 회교를 믿는
말레이인이고, 12%는 불교를 믿는 중국인 그리고 나머지 8%는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으로 구성되어 있어, 세개의 민족과 세개의 종교가
공존하는 나라이며, 수가 많다보니 정치는 말레이인이하고, 돈은 90%이상이 12%의 중국인 수중에 있지만, 그런대로 조화를 잘이루고
있었다. 형태는 왕이 있는 왕정공화국이지만, 왕은 완전히 국가의 상징에 불과하고, 선거의 의해 선출되는 수상이 실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왕족도 네가족이있어, 4년마다 한번식 네가족사이에서 돌려가며 왕이되는, 민주주의가 잘되고있는 나라였다. 이러다보니, 정부의 가장 큰
과제가, 어떻게 중국인에게 과다 편중되어있는 부를 전국민에게 골고루 나누어 줄수있느냐?는것이었다.한편, 여기서 공장을 운영하려면,
공장안에 서로 다른 세개의 종교를 위한 세가지 절을 세워야하고, 돼지고기를 안먹는 회교, 고기를 안먹는 힌두교, 고기없이는 못사는
중국인등을 위하여 각기 다른 식사를 제공하여야한다. 위의 사진은 왼쪽과 중앙이 국립묘지이고, 오른쪽이 수많은 불교사원 중의 하나이다.

페낭은 말레이지아 북서쪽 해안에서 약간
떨어저있는 조그만 섬으로, 관광휴양지로 유명하며, 많은 휴가객들이 찾아오는 곳인데, 우리가 출장중에 놀러만 간것은 아니고, 이곳에 유명한
미국의 반도체회사인 인텔이 반도체공장을 갖이고 있고, 거기의 현지사장이 옛날에 KMI에서 유일한 AMI직원으로 경영에는 참여치 않는다는
조건으로 2년동안 파견되어 있으면서 기술자문을 하여주든 Mr. Chuck Hamrick이어서, 그를 만나 말레이지아에서의 공장경영에 대한
얘기를 듣기 위하여 찾아갔었다.

태국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나라임으로
설명은 생략하고, 위사진은 유명한 왕궁사원과 운하시장이다. 우리는 뱅콕공항에서 작별하고, Jane은 대만으로 돌아갔고, 나는 인도로
향했다.

인도는 내가 다녀본 모든나라에 비하여, 엄청나게
거대하면서도 가장 형편없는 나라였다. 영국이 인도에서 철수하고 인도가 독립하든날, 기념식장에서 인도고위관리가 자기네가 독립하는것보다도
"영국이 식민지를 잃었다"고 슬퍼하드라는 일화가 있지만, 인도국민들은 원래가 철저한 식민지근성이 뿌리 깊이 박혀 있어, 자기보다 조금만
힘이 없는사람은 사람취급도 안할려고하고, 조금만 힘이 있는 사람에게는 온갓 아첨을 다하는것이 인도인이다. 거기에, 예로부터 철저한
계급사회로, 맨위에는 중들인 "파라문"계급이있고, 그다음이 왕족, 그다음이 귀족으로, 이를 다 합치면 약 5%정의 인구이고, 나머지
95%는 일반시민인데, 내가 방문했든 1978년에도, 인도정부는 순전히 이5%를 위하여만 존재하고, 나머지 95%는 죽건살건 관심도
없는것 같이 보였다.
내가 수많은 나라를 여행하면서, 길거리에서 거지들
때문에 길을 걸어다니지 못한곳은 인도 뿐이다. 멋모르고 거지에게 1센트도 안되는 돈을 줫드니 순시간에 수십명이 몰려드는데 더이상 길을
걸을것을 포기하고 돌아올수 밖에 없었다. 봄베이에서 가장 고급인 타지마할호텔에 들었었는데, 하루는 저녁을 먹으러 현관으로 내려오니까 밖에
백명도 넘는 사람이 모여 호텔안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수위에게 누구 유명한 사람이 호텔에 왔느냐니까, 그게 아니고 가난한 사람들이
호텔안에 잘차려 입은 사람들이 부러워서 들여다보고 있단다. 비행장으로 가면서 1딸라를 인도의 최소화폐로 바꿔서 거지에게 줄돈을 마련해서
갔는데, 신호에 차가 설때마다, 10세 내외로 보이는 거지 아이들이 몰려와 돈을 달란다. 그러니 얼마 가지않아 바꿔온 돈이 동이나서,
돈이 없다니까 그 어린아이들이 담배를 달란다. 그때 택시운전수가 저애들이 저돈으로 무엇을 하는지 아느냐기에, 배가 고파서 밥을 사먹는것
아니겠느냐니까, 웃으면서 그게아니고 도박을 한단다. 봄베이는 해안이라 차를 타고 가다보니까 아름다운 모래사장이 많이 보이는데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것들이 모두 거지들의 잠자리라고 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끝이 없다. 당시 공장 직접인력(여공)의 시간당인건비가, 아세아에서는 홍콩이 $0.80.으로 제일 높았고, 다음이 대만의 $0.50,
한국이 $0.30.정도였는데 인도는 $0.03정도였다. 인도에서 간디의 묘지에도 가보았지만, 어쩐지 자꾸 간디의 위대함이 별거 아니게
느껴지고, 오히려 영국치하가 계속되는것이 이나라를 위하여 더 좋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은 우리 중앙청의 10배도 넘을 인도의
중앙정부청사와, 힌두교 사원에 있는 거대한 탑으로, 표면이 전부 조각이 되어있었다.

모리셔스섬은 인도양의 서남부에 위치한 조그마한 섬으로
지정학상으로는 아프리카에 속한다. 왼만큼 큰지도가 아니면 점으로 밖에 안나타나는 이섬은 오래동안 무인도로 있으면서 인도양을 무대로
활약하든 해적들의 본거지로 많이 사용되었었다한다. 그러다가 300여년전에 폴튜갈과 홀랜드가 각각 일시 점령하였었으나, 워낙 쓸모가 없어
철수하고, 약 200여년전에 불란서가 점령하여 백여년을 끌었는데, 약 100여년전에 영국이 기습상륙하여 불란서를 내쫓고 자기네 영토로
만들어, 인도에서 많은 노무자를 데려다가 사탕수수를 재배하기시작하였다한다. 2차대전후에는 독립하여 영연방의 하나가 되었고,
공식적으로는 영국의 여왕이 이나라의 총수이다. 오랜 불란서와 영국의 점령 덕택에, 전국민이 불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하고, 오히려 불어가
더많이 쓰이는 사회이다. 인도인이 많으나 거이 모두가 하류노동계급이고, 남아연방처럼 백인이 판을치는 나라로, 유럽에서 대학교육을 받은
기술자들도 많아, 쉽게 고용할수 있다고 한다.
이섬은, 위의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90%이상이 사탕수수밭으로 덥혀있어, 설탕수출이 수입의 대부분이나, 위도상의 위치가 하와이와 같아 (단지 반대쪽인
남반부지만 위도는 같다), 유럽인들에게 관광지로 널리알려저있어서, 유럽의 주요항공사의 비행기가 매일 수없이 관광객을 실어 나르고 있고,
남아연방의 백인 부자들이 많이 찾아와, 그런대로 관광수입도 적지않다. 그러나 설탕만으로는 점점 살기가 힘들어져, 공업화를 하겠다고,
전세계의 투자자들을 적극 유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AMI에서 한번 가보라해서, 방문하게 되었었다.
나도 처음듣는 섬이라,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뉴델리에서 Visa를 받아서 이섬에 도착한것이 캄캄해진 후의 저녁때였다. 공항에서 나오니까 어떤 건장한 인도인이
택시를 타겠느냐고하여 타자고 했드니, 택시 표시도없는 차에 태우고 공항을 나섰다. 그런데 밖은 캄캄하고 차도 별로 안다니는 길을
한없이(?) 가는데, 운전수는 건장하고, 길양쪽에는 내키보다 더큰 사탕수수밖에 없고... 어쩐지 좀 무시무시한 생각이 들었다. 한20분을
넘겨 갔드니, 전기불이 보이고 도시가 나오기에 이제는 살았다 했드니 그도시를 지나치고 또 한없이 컴컴하고 사탕수수만 보이는 길을
달리는데, 여행자는 보통 현금을 갖이고있고, 여기서 운전수가 강도로 돌변하여, 현금을 뺐고 사탕수수밭에 시체를 던져 버리고 가면,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것을 아는 사람도 없을테니 실종신고 할 사람도 없을테고.... 점점더 무서워지는데, 낯선 외국여행을 수없이
했지만 이렇게 겁이나보기는 처음이었다. 도시를 지나서 다시 20여분을 가니까 예약한 호텔간판이 보이는데 어찌나 반갑든지, 그래도 제대로
가는구나하고 그제야 안심을 할수가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공항은 이섬의 최남단에 있고, 수도는 중간에 있으며, 호텔은 북단에 있어,
그동안에 섬을 남북으로 종단한 셈이었다. 어쨌든 공포의 40여분이었는데, 날이 밝은 다음날 돌아보니, 바다물은 맑고, 열대성 나무는
우거지고, 정말 하와이보다 더 아름다운 섬이었다. 이섬에서 놀란것은 백화점에를 들렀드니 스피커에서 "아리랑"이 나오는것이 아닌가?
깜작놀라 점원에게 방송국에서 보내는 방송이냐고 물었드니, 그것이 아니고 자기네 백화점내에서 보내는 음악이란다. 이노래가 어디서 났느냐고
알아 보았드니 한국배의 선원이 준것이란다. 나중에 부두를 지나다보니 태극기를 단 한국원양어선이 정박해있어 사정을 이해할수 있었지만,
한국의 어선이 이 먼데까지 온다는것에 또한번 놀랬었다.
이섬을 끝으로 약 한달에
걸친 동남아 여행을 끝내고 대만으로 돌아와, 한달쯤 호텔생활을 더 하면서, Motorola에게서 TMI 매각대금을 모두 받아 이곳
저곳과의 TMI 금전관계를 청산하고, 한국을 경유하여 미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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