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 JA에 가다
1963년
1월 7일 서울을
떠나 4월 l6일에
돌아오기까지, 만 100일간
직장에서 파견되어 기술훈련차
일본에 간 일이
있었다. 가 있은
곳은 일본 "요꼬하마"에서
열차로 두정거장 남쪽에
있는 "도쓰까"라는
곳이였다.
HM5AJ(그
당시는 부산에 있었으므로
호출부호가 HM5AJ였다.
지역이 달라지면 호출부호의
가운데 숫자가 변한다)가
1월 7일 NWA편으로
하네다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서울의 HM1AB로부터 들은
일본의 아마추어 JA1FAF, JAlCIB
둘이 하네다까지 출영을
나왔었다지만 서로 열굴을
모르기 때문에 만나지
못하고 말았다.
도쓰까에
숙소를 정하고 곧
그 전에 거의
매일 같이 교신하여 서로
얼굴은 모르지만 전파로
친해진 JAlBRK, JAlBNK, JAlBUI등
몇몇 아마추어에게 엽서를
띄우고 도착을 얄렸다.
1월
l3일 아침, 일본에
와서 맞이하는 첫
일요일의 아침이었다. 전화가
왔다기에 받아보니 JAlBRK로
부터였다. 그는가마꾸라에 있는
대학생으로 "요네무라
다찌오"라고 한다. 전화는
오늘 일본의 "모오빌
햄 클럽"의 원승회가
있는데 오지 않겠느냐?는
얘기였다. 아직 길도
잘 모르고 첫
일요일을 어떻게 지낼까
하던 참이라 한말로
OK하고 가마꾸라역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만난다고
해도 서로 열굴을
모르는 터라 서로
자기의 모습에 옷에
한참 설명을 해야
했다.
약속
시간인 아침 10시,
가마꾸라역 앞에 서
있는 내 앞에
새나라(Datsan Blue Bird 가
본명이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새나라로
통하니까 이렇게 적어둔다)
1대가 멎었다. 차
뒤에 서있는 안테나와
유리창에 빨간색으로 써
있는 JAlBRK라는 글씨로
그것이 바로 "다찌"(다찌오를
교신할 때는 늘
이렇게 불렀다)의
자가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린 예쁘장한 청년,
그가 바로 다찌였다.
전파로 잡담 할 때는
1시간 2시간썩 예사로
얘기했기 때문에 목소리는
잘 알고 있지만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다찌가 운전하는
새나라차에 올라 탔다.
차는
우선 가마꾸라를
한바퀴 돌기로 하고
시내로 들어서면서 다찌가
마이크를 잡았다. 차내에는
이동무선국(자동차 속에
었는 것을 모오빌
스테이숀, Mobile Statlon이라
한다)이 설치되어
있었다.
"CQ CQ 여기는
JA1BRK 모오빌. 듣고 계신
분이 계시면
응답해
주십시요."
응답은
단번에 있었다. 같은
가마꾸라 시내에 있는
JAlHQZ가 금방 불러 왔다.
"JA1BRK
모오빌, 여기는 JAlHQZ. 오버"
"JA1HQZ
여기는 JA1BRK, 현재
가마꾸라 역전을 떠나 XX를
통과 중입니다. 옆에
멀리 한국에서 온
HM5AJ가 타고
있읍니다. 소개 합니다."
마이크는
나에게로 넘어왔다.
"JAlHQZ 여기는
JAIBRK 국에 동승한
HM5AJ 입니다. 약 l주일
전에 일본에 와서
오늘
이렇게 다쩌의 신세를 지고
있읍니다."
"OK, HM5AJ, 우리집도
꼭 들려주십시요."
이렇게
해서 차는 다시
되돌아서 JAlHQZ씨 집
앞에
멎었다. 그러나 오늘의 원승회
때문에 JAlHQZ 와는 간단한
인사로 73(헤어질 때의
인사)하고, 돌아서서
도오까이도로 들어섰다.
일본에는
이런 모오빌 햄들이
많다. 자가용이 널리
보급된 덕택이지만, 이들이
모인 것이 JMHC (Japan Mobile Ham
Club)이다.
이 JMHC 가 오늘
하꼬네(후지산 밑의
관광지)로 원승회를
간다는 것이다. 도오까이도에
가까워 지자 JMHC의
차들이 서로 교신하는 것을
수신할 수 있었다.
모오빌
햄은 즐거워
"여기는 3번차
JA1JLG, 현재 ××지점을
통과중.
다음
2번차."
이
식으로 시시 각각 자기
위치를 알리면서 도오까이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의 통제관 격인
JMHC 의 회장 JAlDWI는
미리 하꼬네에 가
있어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하꼬네로부터의
FM 신호가 깨끗이 들려오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도 한몫 낄
것인가 아닌가를 정해야
했다. 원래는 도오까이도
어구에서 그들과 인사만
하고 돌아올 예정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도오까이도에 들어서서
3번차 와 4번차
사이(자동차니까
그
사이도 한참 떨어져
서로 보이 지는
않고 무선기를 통하여
목소리만 들린다)에
끼어들고 보니 그대로
돌아설 수도 없었다.
"JA1JLG 3번차,
여기는 JAlBRK, 당신
바로
뒤를 따르고 있읍니다.
옆에는 한국에서 온
HM5AJ가 동승하고
있읍니다"
JAlJLG 가 힐끗
뒤돌아
보는 것이 보였다
"OK
JAlBRK 여기는 JA1JLG, HM5AJ 반갑습니다."
이래서
JMHC 멤버들의 권유로
그대로
하꼬네까지 가기로 했으나,
다찌가 집에서는 잠깐
다녀오기로만 하고 나왔기
때운에 집에 연락을
해야 한다는데, 그
때는 이미 차는
가마꾸라에서 lO킬로미터나
떨어진데다가 중간에 산이
있어, 5l메가헤르츠의
초단파를
쓰고 있는 그의
송신기로는 아무리
불러도 가마꾸라로 부터는
응답이 없다.
그는
직접 교신을 포기하고,
하꼬네 산 위의
통제관 JAlDWI를
불렀다.
"JAlDWI
JAlDWl, 여기는 중간에서
끼어든
JAlBRK 입니다. 이번
원승회
중간에서 끼어들어 3번차와
4번차 사이에 있읍니다.
그런데
집에 전화를 하고
늦겠다고 얘기 해야겠는데
거기서 가마꾸라를
불러봐 주십시요."
하꼬네는
산 위라, 멀기는
했지만 쉽사리 가마꾸라와
연락이 되었다.
"JA1BRK, JAlDWI.
지금
연락 해 놨읍니다. JA1HQZ가
BRK씨 댁에 곧
전화하겠답니다."
이래서
약 20여대의 햄
캬라반은 왼편으로는 푸른
태평양을 끼고,
멀리 후지산을 바라보며
잘 포장된 도로를
시속 90-10O킬로의
쾌속으로
달리며 서로 잡담을
하고 있었다.
하꼬네가
앞으로
lO킬로 쯤 되였을 때,
또다시 통제관의
목소리가 차내의
스피이커에서 흘러나왔다.
"각국,
각국. 여기는 JA1DWI.
지금부터
점심준비를 위하여
인원조사를 합니다.
1번차 부터 차례로 인원보고를
해주십시요.
"l번차
JA1XXX. 인원 2명.
오버."
"2번차
JA1YF. 인원 2명반.
반은
꼬마. 오버."
"3번차
JAlJLG. 인원 1명.
오버."
"4번차
JAlBRK. 인원 2명.
오버."
인원조사
결과 총 35명. 이래서
우리가 하꼬네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35명분의
점심이 준비되어 있었다.
하꼬네에
거진 다 가서
등산도로인 유료도로에
들어섰을 때, 우리는
우리 앞의 JA1JLG를
앞지르고 나섰다. 앞에
가는 세단에는 JAlYF와
그의 XYL(부인)인
JAlFMP가 아들을 태우고
달리고 있었다. 그의
자동차 번호는 7388, 73은
상대가 남자일 경우,
88은 상대가 여자인
경우, 햄들이 헤어질
때에 쓰는 작별인사 부호로,
햄들이 가장 자주
쓰는 전신약호의 하나이므로,
이 번호는 JMHC 멤버들
사이에 유명한 번호였다.
JAlYF 가 이 번호를
받느라고 무척 애를
썼다고 한다.
하꼬네에
일단 집결한 모오빌
햄들은, 여관방을 빌려
점심을
별여 놓고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잡담을
하고 즐거운 l시간 남짓을
보낸 후 다시
귀로에 올랐다. 이날
JA1BRK는 그의 차로
도쓰까의 숙소까지 대려다
주었다. 이날 만난
햄들만도 30여명으로 일일이
누구였든가 기억도 안날
정도지만, 한국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고, 집으로의 초대도
많이 받았지만 (대부분이
한번도 교신조차 한
일이 없는 햄들이었다.)
결국 시간이 없어
한사람도 찾아가
보지는 못했다.
숙소에
돌아와 하꼬네 구경을
하고 온 얘기를
했더니, 함께 갔었던
회사 동료들은 무척
부러워 했다. 일본에 도착하자
첫 일요일에 하꼬네까지
드라이브를 하고 왔으니
역시 햄이 좋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한번
절실히 느껴젔다.
그
후
일본에서 만난 햄들의
수는 약 l50명에
달한다. (수첩 에
기록된 것만) 그러니
나는 언제나 바빴다.
닛뽕호오소오에 근무하는
JA1BUI 후루다군은 나의
연락관
노릇을 톡톡이 했다.
여기 저기 햄들과
연락하여 스케줄을 짜서
나에게 연락을 해주면
나는 지정된 시간에
지정한 장소에 나타나기만
하면 됐다. 이렇게
친절하게 해준 후루다군과
나는 실제로는 전파로
한번 교신했을 뿐이였다.
일본에서
100일 동안에 겪은
재미있는 얘기는 많다.
2월
23일. 이날은 토요일이라
당시 도쓰까에 와
있던
일행이 처음으로 아다미
온천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날
아침에 후루다군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 일요일
아침 l0 시에 서울과
교신 스케줄을 짜
놓았으니 시나가와에
있는 JAlEL에게 가라는
것이였다. 서울과의 교신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띈 나는 아다미가
문제가 아니었다.
이튿날
일행은 아직 잠들고
있는 아침 8시,
아다미 여관 방에서 흔자
빠져나와, 열차를 잡아타고
도오꾜로 향했다. 시나가와에서
내려 JA1EL에게 전화를
거니 곧 나갈테니
역에서 기다려 달라는 것이였다.
물론 JAlEL도 이번이
초면이다. 그러나 워낙
초면인 사람이 많기에
카메라 빽에 HM5AJ 라고
써붙이고
다녔다. 약 5분후
JAlEL을 만나 그의
집에 가서 그의
수신기로 서울을 찾았다.
우리는 부부 햄이라
XYL도 HMlAM(당시는 HM5AM)이라는
콜 사인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은 HM5AM이었다.
아침
10시반. "CQ 서울"에
응답해 온 것은
HMlAB였다. 일본에 앉아서
"CQ 서울"을 부르는
기분은 색다른 것이었다.
"HM1AB 여기는
HM5AJ/JAl"
아예
JA1EL의 콜 사인은 빼버리고
HM5AJ/JA1(/JAl은
JAl
지구에 이동중임을 표시한다)으로
한국말로 송신해 버렸다.
"HMlAB 여기는
HM5AJ/JA1. HM5AM과 스케줄이
있는데 모르십니까?"
AJ, XYL 과의
QSO 성공
"HM5AJ/JAl. 여기는
HMlAB. 그러면 HM5AM이
나갑니다."
이래서
서울과 도요꾜 사이의
부부간의 교신이 이루어 질수
있었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이
HM5AM - HM5AJ간의 교신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서울에서도 서너명의
햄들이 송수신기 앞에서
도와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고마웠다. (이때만
해도 국제전화란 너무 비싸서
생각도
못하든 시절이었다.)
교신은
약 30분으로 끝났지만
이것도 동료 일행의
선망꺼리가 되는데는 충분하였다.
그런데
그
후 창피하긴 하지만
재미있는 사건이 있었다.
JAlEL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온
나는 주머니를 뒤져보고
깜작 놀랐다. 지갑이
없다. 틀림없이 넣고
나온 줄 알았는데 어저께
잊어버리고 딴 옷에
넣어 놓은채 그냥
나온것이다. 절해의 고도에
온 기분이랄까? 아는
사람이래야 일본사람 햄 뿐.
포켓에는 십원짜리 동전이
3개 뿐. 도쓰까 까지의
차표는
백이십원이니 오지도 가지도
못하게 되고 말았다.
다시 JA1EL에게 돌아가자니
그것도 미안하고.
할
수
없이 슬슬 걸어서
역까지 나와서는 수첩을
뒤졌다.
적혀있는
햄들의 전화번호가 약
10개쯤 되였다. 그렇지만
외국인에게 더구나 일본인에게
구걸하기는 창피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비상용으로
사가지고 간 금반지 생각이
났다. 그래서 거기서
다시 걸어서 긴자까지
나가서 금은방을 다
들어가 봤지만, 그들은
팔기만 하지 사는데는
따로 있다는데 아우리
찾아도 사는 곳이
없다. 궁한김에 전당포를
찾아도 일요일이라고 모두
문을 닫아서 그것도
안될 노릇이었다. 결국
이 금반지는 냐와
함께 그대로 귀국하고
말았다.
결국
실컷 걸어 다녀
지칠대로 지쳐 더
이상 걷지도 못하게
되고 말았다. 이대로
지나다가는 파출소 신세를
지게 생겼으니 남은
것은 최후수단으로 역시
햄 밖에 없었다.
공중전화 앞에 서서
이 중에
누가
집에 있겠나 따지면서
셋중의 1개의 동전을
넣고 디아얼을 돌렸다.
"나가고
없읍니다."
할 수 없이
두번째
투자를 했다.
"집에
없는데 누구라고 할까요?"
누구라고 하면 뭐하나?
당장 급한데....
마지막
l개의 동전을 들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JAlAHS 생각이 났다.
라면집을
하니까 늘 집에
있을께고, 자가용도 있으니
오기도 쉬울테고, 서울
있을 때 부터 거의
매일 만났으니 친하기도하고,
"제발 집에 있어다오"
속으로 빌며 마지막
동전을 집어 넣었다.
다행히도
그는 집에 있었다.
그의 목소리만 듣고도
살았다 싶었다. 사정 얘기를
하고 우선 도쓰까 까지의
차비만 빌려
달라고 SOS 신호(?)를
보냈다. 그는 곧
자동차로 달려와서 천원을
빌려줬고 이래서 나는
겨우 도쓰까 까지 돌아올
수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슬아슬했지만, 햄의
우정과 편리함을 다시
한변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SOS 돈지갑을
놓고 나왔읍니다”
우리가
일본에 가 있을
때 동행했던 동료중에
또 하나의 햄인
HM5AT 김세환씨가 있었다.
우리가 일본으로 떠날
때 김형의 XYL은
만삭이 가까워 해산을
1개월 남짓하게 남겨
놓았었다. 김형에게는 딸만
둘이 있었기 때운에 김형네는
무척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3월
16일 저녁 7시쯤.
우리 숙소에 도오꾜의
JAlINJ로 부터 시외
전화가 걸려왔다. 사무실로
달려갔던 나는 JAlINJ로부터
부산 소식을 듣고
열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HM5AT 김세환씨
부인께서 오늘 아침
무사히 순산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
뉴우스로 일행은 김형을
가운데 놓고 한턱
내라고 법석이었다.
김형댁에서
불과 수백미터 쯤 되는
거리에 HM5BF 김동호씨가
있었다.
득남의 소식은 김형댁에서
곧 HM5BF에게로 전달됐으나
마침 정전이라 전파를
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저녁때가 되어
전기가 들어오자마자
HM5BF는 송수신기 앞에
앉아
JA1INJ를 만났고, 이
소식을 JA1INJ 는 시외
전화로 우리에게 알려왔던
것이다.
이
JA1INJ는 가나마찌라고
도오꾜의 북쪽 끝에
살고 있는 학습원대학
학생인 햄이다. 집에서는
떡장사를 하는데, 떡장사라
해도 각 백화점에
배달하는, 떡장사라기 보다는
떡공장이다. 배달용 새나라가
7대나 되고, 세단이
l대 있으니까
일본서도 부유층에 속하는
집안이다.
이
JAlINJ도 우리(나와
HM5AT 김형)에게 무척
친절하게
해주었다. JA1INJ국의
전파로
여러번 부산과 통화할
수 있었고, 나는
XYL HM5AM과, 김형은 HM5BF의
전파로 흘러나오는 그의
딸들과 이야기했다. 도오꾜에
앉아서 가족과
직접
통화하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마 햄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
것이다.
그
밖에도
일본에서 햄이기에 경험할
수 있었던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일본의
부부 햄인 JA1CO 와 JAlYL부부의
초청으로 두세번 저녁
대접을 받았고, 나고야
근처에
사는
JA2YT 라는 햄의 초청으로
나고야를, 교오또의
JA3CKI의
초청으로
오오사까와 내셔널의 부품공장을
견학할 수 있였다.
JAlBUI 후루다군의 연락으로
NSB(일본단파방송)에
나가서 15 분간의 인터뷰
방송도 했다.
어디를
가나 햄은 외롭지
않다. 한번을 만났거나
열번을 만났거나 또는
한번도 만난 일이
없거나 간에 "HM5AJ
조동인입니다."의
한마디로 OK였다. 콜
사인의 위력이 이렇게
강한 것은
실제로
경험해 보고 처음
알았다. 그리고 이래서
햄들은 자랑하는
것이다.
"아마추어는
우호적이다"
라고.....
- 1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