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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기 아마추어무선의 역사
일제시대 –
1973년
KE6AJ/ex-HM1AJ
조 동 인
제
3 부 (1962 -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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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9A/p
독도 원정기
(HM1AS
이광수)

이
Expedition에 참가한 인원
지휘
이광수 HM1AS
운영 조요성 HM1AA
정비 전희국 HM1AW
의무 정정덕 HM1AU
수송 박종웅 SWL (HM1BK)
한국일보사 특파원
: 사회부 기자 김중배, 사진부 차장
정범태
사용된
Rig는
송신기
: Johnson Viking II (3.5 – 28MHz, 출력
CW-150W, AM-120W)
자작 VHF 송신기 : CW-30W,
AM-20W)
수신기
: Hammerland SP-600
Transceeiver
: PRC-6 - 2대
안테나
: 14MHz 전용 Ground Plane, Long Wire –
3.5, 7, 21, 28 MHz
발전기
: 2.5KW
2월1일
16:30 우리 일행이 승선한 65함은 시속
18 놋트의 속도로 독도를 향하여 진해항을 출발 하였다. 여기서 특기할 사실은
HM9A가 한국에서 최초롤 함상에서 Maritime Mobile을 운용했다는
사실이다.
“CQ
CQ CQ Here is ㅡMaritime Mobile HM9A Korea calling…”
CQ가
끝나기가 무섭게 불러오는 무선국은 Norway의
LA5VB였으며 HM9A/mm의 신호는
R-5 S-9이라고 전해왔다. 한국 최초의
mm 운용에 최초의 교신국이 DX stn이기 때문에 우리의 사기는 왕성했고
LA5VB에게 우리의 원정계획을 알리고 73!. 이때
65함의 QTH는 부산 앞바다라고 생각됨.
계속하여 9M2, VK, ZL 등지에서 불러왔다.
서울에서라면 요사이의 전파싱태로는 상당히 교신이 힘든다고 생각되는 FB한
DX STN이 한꺼번에 불러오기 때문에 OPs는 즐거운 비명을 질르지 않을수가
없었다.
우선 처음으로 장시간 배를 타보는
OPs였으므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배멀미를 시작하여 한사람 두사람씩
침대에 쓸어져, HM9A/p를 운영할 OP가
없기 때문에, 다시 얻기 힘든 좋은 기회인줄은 알면서도.
자기 한몸 지탕하기 힘들어, 이이상 QSO할
energy have no .였기에, 2/2 04:05 VK4SS와의
QSO를 끝으로, 눈물을 머금고 한국 최초의
Maqritime Mobile을 QRT하고 말았다.
HM9A/mm의
성과는 : LA - 1 stn, VK - 9, 9M2 - 1, DU - 2, VS6 - 1, W -
1, CR9 - 1 stn.
17시간의
항해를 마치고 2월2일
08:30에 독도에 전 대원이 무사히 상륙!! 요사이의 기상상태로는 독도상륙이
도저히 곤란하여 상륙할수 있다면 기적이라고 65함의 함장님이 말씀하셨으나,
하늘도 우리를 도우셨는지? 별일 없이 상륙할수 있었다,
그림과 사진에서만 보든 독도를 직접 육안으로 바라다보는 우리들의 가슴은 벅찼으며,
조금전 까지 배멀미로 고생하든 몸에서 새로운 용기와 힘이 용소슴 쳐, 75도의
경사와 해발 150m나 되는 독도 정상에 짐을 운반하느라고 대원들 모두 비지땀을 흘렸으나,
시원한 해풍이 우리의 땀을 씻어주기 때문에 별로 고통스러운 감도 느끼지 못했다.
독도는 동서 두개의 주섬과 주위에 점점히
흩어진 무수한 작은 바위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동도와 서도 사이에 촛대와 같이 뾰족하게
높이 솟은 바위섬이 있어,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3개의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는것 같이도 보이므로, 이조 성종왕 때에는 독도를
"삼봉도"라고도 하였단다. 동서
양섬의 거리는 약 200m. 동도의 주위는 약 1.5마일
반, 서도의 주위는 약 1 마일 정도 되는
극히 작은 화산도로서, 동도에는 분화구가 완전히 남아있어,
마치 세발을 세워 놓은것 같이 속이 비어 있으며, 동쪽 벽은 뚫여서 바다물이
유통하고 있다. 섬 자체가 화산암으로 구성되어 있어,
섬에는 한그루의 나무도 없고, 계곡마다 이곳 저곳에 잡초만 무성할 뿐이다.
우리 대원들의 짐도 이곳 동도 정상 분화구
옆에 있는 경비대원들의 초소에 풀었고, 여행에 피로한 몸이지만 잠시의 휴식도 없이,
RIG정비, Ant 가설등으로 부지런을 피운 결과,
14:40에는 독도에서 역사적인 전파를 낼수 있었다. 오늘 이 전파를 내기
위하여, 그동안 불철주야 수고한 정성이 이루어질 엄숙한 순간이기에,
MIC를 잡은 손이 나도 모르게 떨린다. "CQ CQ CQ 여기는 독도!
여기는 독도!" 너무나 감격하여 말도 제대로 안나오고,
콧날만 시큰 시큰... hi
독도에서의 첫 교신은
Iran의 EP2EB와 이루어졌고, HM9A의
SIG은 R5 S8-9이라는 Report를
받았다. 계속하여 불러오는 stns는
VK ZL KR6들. 그러나 서울과는 연락이 안된다.
혹시 서울에서 Break가 걸려오지 않을까 하여
SP에다 열심히 귀를 기우렸으나, HM1의
sig은 전혀 입감이 없어, Ops몹시 실망했다.
이때 14Mc에서 KR6MN이
HM1AB를 부르는 Sig을 잡았다. OPs
모든 신경을 청각에 집중 시켜 SP에 귀를 기울이고
HM1AB의 Sig을 잡으려고 몹시 애를 썼으나,
서울하고는 Skip이 되는지?
전혀 입감이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KR6MN을
불러HM1 stn을 만나면, HM9A가
독도에 도착하였음을 QSP해달라고 전하고 73!!
그런데 큰일 났더.우리는
발전기와 휘발유를 독도에 있는 이곳 경비원들의 것을 빌려 쓰기로 하고 왔는데, 발전기도
성능이 과히 좋지 못하고, 휘발유도 재고가 없단다,
현재 남아있는 휘발유로는 불과 5시간 밖에는 발전기를 가동 시킬수 없다니,
어느정도는 고생하리라고 떠나온 우리지만, 처음부터 육체적 고통보다는 정신적
고통이 닥쳐오니 OPs 사기가완전히 저하되었고,
따라서 여태까지의 피로가 일시에 엄습해 오는것 같았다.
그러나 대원들 초지를 굽히지 않고 피로한
몸을 채죽질하며 발전기 만이라도 정비하기로 하고, HM1AW가 주동이되어 발전기 보수작업을
한 결과, 휘발유가 세는 부분과 때때로 비정성으로 가동되든 발전기를
FB하게 보수하여 놓았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로하는 휘발유는 없고,
여기 저기 휘발유를 담았든 빈 통만 데굴 데굴.
2월3일
독도 경비대원들의 교대날이라 울릉도에서 경비정이 도착되었다.그러나 이 배에도 우리가
필요로하는 휘발유는 보급되지 않아, 우리의 긴박한 사정을 울릉도 경찰서장에게 연락하여
주기를 경비정장에게 신신당부 했으며, 한편 우리가 통신망으로
KR6MN과 DU1MR에게 HM1 stn을
만나면 우리의 실정을 QSP해달라고 전헌 후에 연료부족으로 부득이
QRT. OPs Ham stn운영 못하니 김빠진 beer가 되어,
전 대원이 Amateur Radio Op인 본래릐 사명은 망각(?)하고,
임시 등산대가 되어 독도의 지리 답사에 나섰다. 명목은 답사지만 실제는 곤광?
hi 생전 처음보는 분화구도 신기했지만, 사방에 흐터진 화산암도 집어보고
감탄사 연발. 마치 돋고는 우리에게 요지경 속 같은 FB한
곳인 느낌을 주었다.
2월4일
06:08. 우리는 한참 꿈나라를 헤메이고, 파도는 저 혼자 철석이는데,
고요한 정막을 깨뜨리고 뿡~ 뿡~
배의 기적소리가 울린다. 깜작 놀라 선잠에서 깬 대원들.
한다름에 150m 밑에 있는 바닷가로 뛰어 내려가 보니,
지금 막 도착한 적은 발동선에서 휘발유를 내려놓고 있었다. Bravo!!
휘발유를 보급 받아 사기 왕성해준 OPs 철야 QSO!
Sunspot 40이하로 낮아진 최근의 전파상태로는 서울서 도저하 QSO
불가능한 FB한 DX stn이 연달아
HM9A를 불러오고 주위에 Noise가 전혀 없으니
QSO하기에는 이곳이 지상 최대의 낙원!! OPs 교대로
Mic잡기로하고, 나머지 OPs는
해변가에 나가 소라와 김을 땄다. 서울에서는 한게에 백환을 호가할 주먹 만큼 큰 소라가
무진장 서식하고 있으므로, OPs 벌거벗고 바닷 속에 들어가 소라잡이에 정신이 없다.
잠간동안 잡은 소라가 한 바께스가 넘어 , 덕분에 저녁 반찬은 소라로 포식!!
hi hi
독도의 요사이 기온은
2C - 6C이고, 제일 추운 때라도
0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단다. 그러나 바람이 심해서 파도고 상당히 높이 일고,
이곳 등대 위에 가설한 50MC 3 Element Beam Antenna가
바람에 날려서 바다에 빠질것 같다. 독도의 기온이 몹시 추울줄 알고 방한대책을 완전히
준비하여 수륙천리 끌고 온 우리의 장비가 무용지물이 되어서 오히려 거치장 스러운 암적존재가 되었다.
2월5일
12:05 HM1AP와 HM1AB를 14MC에서
처음 만났다. OPs는 물론이고 상대국도 너무나 반가워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겨우 안부만
전하다, 전파상태가 좋지않아 QRT!! 15:10에
다시 서울과 연결되어, HM1AB, HM1AV, HM1AT, HM3BD, HM4AQ등 모든
HM stn과 교신이 될것 같은 기분으로이쪽의 사정을 자세히 전달했고, 서울의
소시도 들었으며, 앞으로 매일 아침에 7MC에서
정기적으로 만나기로 약속한 후에, 3.5MC Band로 내려가서
QSO. 독도 원정에만 사용하라고 체신부당국에서 활당한 3.525kc가
우리에게는 너무 band폭이 좁아 이맛살을 찌프리게도 했지만,
이땅에 ham이 개방된 이래 처음 활당된 주파수이기에 자위하고
3,525kc에서 CQ를 냈다.
그런데 큰일 났다.
왜냐구? 3.5MC Band가 발칵 뒤집혀젔기 때문입니다.
한꺼번에 수십국의 JA들이 동일 주파수에서
HM9A Dokdo Island를 불러오는데, JA들 끼리의
QRM 때문에 QSO가 불가능하게 되고 말았읍니다.
HM9A는 3.525kc에 VFO를
고정시키고, JA Stns에게 다음과 같이 왜쳤다.
"HM9A과 교신하려는 stn은 현재의
HM9A의 주파수에서 5kc up 또는
5kc down에서 불러주시요."
이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3.5MC Band의 JA stns들이 제각기 상하의 주파수에서 불러와서,
겨우 JA4NV와 교신할수 있었고,
이어서 JA4BEI, JA3YAP등과 교신할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교신하는 중간에 break를 거는
JA들이 너무 많아서 QSO에 많은 지장을 초래함으로,
Break를 걸어오는 stn의 Call을
기록하여 두었다가 이렇게 왜쳤다. "HM9A가 교신 도중에
Break를 걸지 마시고, 지금 여러분에게 번호를 정하여 줄테니 더이상
QRM응 일으키지마시고, 번호를 기다려 주십시요."라고
웃지못할 진풍경을 연출하였다. 3.5MC Band에서 모든
JA들이 HM과의 First QSO라고
하는것은 이해가 가지만, 3.5MC에서 첫 해외교신이라는 감격해하는 무선국도 많았다.
2월6일.
이제는 독도에서의 전파상태를 우리가 파악할수 있기 때문에, QSO하는데에
능율적으로 할수 있었고, 매일 오전 08:00에
7MC에서 HM1과 QSO가
되기 때문에 멀리 떨어진 동해의 고도에 와 있지만 서울의 소식을 누구보다도 빨리 알수가 있었고, OPs가
독도에서 잘 있다는 소식을 집으로 즉시 즉시로 QSP하여,
집에서도 큰 염려를 안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Ham들의 가족만 누릴수 있는 특권이이라 할까?
불철주야
24시간 계속하여 HM9A를 운영하다보니 조금씩 피로의 기색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HM1AU는 너무 과로한 탓인지?
감기 + 몸살로 고생!! 16:54에
OH5SM과 QSO가 성립되었는데 상대가
YL이었다. 이름은 Carola.
오래만에 듣는 YL목소리에 Miss인줄
알고 열을 올리다가 알고보니 XYL! 한 대원의 말씀이 독도에서 듣는
Carola의 목소리는 어느 유명한 가수의 노래소리보다도 아름답다나!!!??? hi hi
서울에서 중앙정보부장님과 한국일보사
사장님으로 부터 격려전문이 도착되었다. 이런것이 도착 될 때 마다OPs의
사기는 왕성. 그러나 피로 때문인지 하품은 계속 나오기 때문에 마치 하품
contest 같은 기분.!!
2월7일.
30갤론 공급 받은 휘발유가 또 끊어져 간다.전파상태가 좋아 계속 철야근무를
하느라 휘발유 소모를 염두에 두지 않아 품절되어 가는것도 모르고 교신!! 울릉도 경찰서에
휘발유가 또 품절 되었으니 선처 바란다고 연락을 했드니, 저녁 늦게 울릉도 서장님께서 손수
휘발유를 갖이고 오셔서 우리 OPs를 격려해 주시니
OPs의 기분은 하늘을 나를듯!! 오늘
ZS6와 CR6가 QSO되었으니,
이로서 6대주 교신에 성공.
따라서 WAC상도 완성!!
2월8일.
08:05에 HM1 stns와 교신 도중에 독도개발위원회 이사장으로 부터
격려전문을 받았고, 이어서 독도 근해에 태풍경보가 내려졌다.
HM9A도 따라서 울릉도로 철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해군측에서의 선편이 늦을것
같으니 울릉도의 작은 선박으로라도 철수하라는 지시였다.
그러나 울릉도의 회답에 의하면 거기서도 곤란한듯.... OPs 이동준비
완료하고 선편 오기를 고대하였으나 저물어도 소식은 감감! HM1AU는 몸살로 점점 더
고생을 하고 OPs의 사기는 극도로 저하하고....
저녁부터 JA와 7MC과
3.5MC에서 QSO. 또 다시 3.5MC에서
HM9A 일대 활약.
2월9일.
08:30경에 HM1 stn을 호출하는데 발전기가 고장이 나고 말았으니
우리들은 물론, 독도 경비대원들의 통신망도 완전 두절 되었다.
우리들의 위급한 사정을 일려야 하겠기에 50MC용
TX를 오난전 분해하여 DC TX를 만들기로 하고 종단관은
6AK6로 하고 발진관은 6AK5로 성계하였다.
전원은 flash light용 전지 4개로
A전원을 삼고, B 전원은 PRC-6의
전지를 뜯어 쓰기로 하였으며, 배선을 하기 위해서는 인두를 달궈야 할텐데,
숫도 나무도 힘든 곳이라, 결국 HM1AW의
명안으로 Gasoline Burner를 이용하여 ,
이문제는 어렵고도 싱겁게 해결 되었다.
2월9일
- 12일. 독도의 기상상태는 익화일로로 파도가
5-7m나 되는 날씨가 계속됨으로 OPs 날씨가 좋아지기를 두손 모아
기원했으나 효과 없었고, 더구나 13일에는
지척을 분간할수 없는 정도의 눈이 쏟아져서 모두 두문불출. OPs의 사기도 완잔 저하되고
Energy도 완전 소모되어 가는듯. 물도 귀하여 세수도 사날에 한번 할까하는
정도이고, 본토 (육지)에서
배오기만 하구고대하여 잠꼬대로도 "배 왔다"고
웨칠 정도였다. "이제야말로 동해 고도에서 우리만 남았구나"하는
절망감과 함께, 지루할 정도로 시간이 안가서 짜증만 났다.
2월13일.09:10
어제 밤부터 이곳 경비원 이순경이 복통으로 신음하는데 시간이 경과 할수록 병세는 더욱 더 악화!
우리의 비상용 TX가 또 다시 활약하여 울릉도 경찰서로 중환자 발생을 보고하고,
이송할 선편을 부탁하니, 이튿날 일찍 거세게 치는 파도를 무릅쓰고,
위급한 환자를 구하기 위하여 5톤 짜리 목선이 도착하였다.
우리도 이 배를 이용하기로 하고근 보름동안이나 정들었든 독도를 뒤로하고, 10여시간의
힘든 항해 끝에 19:20경에 울릉도에 도착.
평상시의 두배나 걸려 오느라고 고생도 무척했고, Ops 자기 한몸 가누기도
힘에 겨워, 애인처럼 아끼든 RIG도 마치
헌신짝 취급하듯 운반? hi hi. 울릉도 평화여관에 투숙하였으나
OPs 저녁도 드는둥 마는둥 ON AIR도 못하고 그냥 꿈나라로 직행....
(이하
생략)
2/1
– 2/19의
19일간의 Expedition에서 교신한 기록은
36 Country에 569 Stations. 그들은
:
JA 254 VK 98 W/K 12 KR6 28 ZL
20 DU 14 9M2 12 등등....
이 외에도. F, VE, JZ0, OH, ZK등 수개국과 교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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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연맹일을
60년
10월까지
하다가,
금성사부산공장에
취직하여
내려가면서
3년반을
연맹일에서
멀어졌었으나,
1964년
봄에
금성사를
사직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연맹일에
복귀하였고,
그동안은
HM1AN 김태욱,
HM1AS 이광수,
HM1AY황등일,
HM1BA 박정양,
HM8CQ 하성한
OM들이
돌아가며
연맹일
해주었었다.
1964년에
부산에서
돌아
왔을
때에는
이미
아마추어무선계도
차츰
자리를
잡고
있었고,
남은것은
개인국의
이동운용허가
정도였다.
이때부터는
이인관
이사장님의
노력으로
체신부
청사의
일부를
무료로
얻어
쓸수
있었다,
떳떳이
임대료를
내고
쓰는
사무실은
아니었으나
사무실도
생겼고,
어차피
넉넉한
월급을
주지는
못했지만,
마침
대학을
나와
놀고있던
HM1AM의
동생인
처제를
싼값이나마
월급을
주고
앉혀
놓았는데,
KARL News도
전파과학사의
손영수
사장님의
호의로
전파과학의
일부
페이지를
활애
받아
등사판
신세를
면하고
인쇄형태로
매월
발행할
수가
있었다.
아마추어무선이
1960년도에
전면
개방되어
아마추어무선국의
수도
늘고,
전파과학(발행인
손영수
사장)과
전자기술(발행인
차서욱
사장)등
무선통신
전문잡지도
발행
될만큼
한국의
무선통신계가
발전
하면서,
이들
출판사의
도움도
많이
받았으며
(특히
KARL지의
무료인쇄,
아마추어무선
관련
책자
발행등),
1965년에는
원고를
쓰느라
반년이
걸렸지만
“우정의
전파,
아마추어무선
이야기”라는
한국에서는
최초의
아마추어무선
관련
책을
발행한것도,
전자기술사의
차서욱사장이
결손을
감수하며
발행해주었는데,
이책은
아마추어무선에
관한
책이라고는
전무하던
당시
뿐
아니라,
근래에도
역사적인
책으로
찾는
사람이
많아,
1973년에
재판을,
1991년에는
제3판을
발행할
정도
였다.
1965년에는
또한
이런
아마추어무선계에
대한
공로를
인정
받아
5월
17일에는
ITU 창설
100주년
기념식장에서
체신부장관의
공로
감사장을
받기도
하였고,
한국
최초의
Call Book인
“Ham Radio Pocket Data”가
발행되기도
하였다.




미 8군 사령관 HL9KA
General Conway 가
HM0HQ에 Rig를
기증하였다.
김규한 부이사장님으로
부터 답례품울
받고 있다.
이후에는
더 이상 체신부에
때를 쓸 이유도
없었고,
따라서 연맹과
체신부는 협조가
잘 되어 나갔고,
연맹의 업무는 더
많은 사람에게 아마추어무선을
알리고,
회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회원들의
뒷바라지를 해주는 단체로서,
모든 업무가 Routine업무로
변하여 갔기
때문에 이후는 연맹
창립 30주년
기념호에 실린 년간
업무일지로 대신하기로 한다.




제12차
정기총회




미
포터
대사
(HL9AA)의
Ham Party



이렇게
지나다가
이인관
이사장님께서
너무
장기간
이사장
직에
계셨다면서
이제는
후배에게
자리를
넘기겠다고
극구
고사하시어,
1969년에
당시
명지대학
학장이시던
유상근
OM을
2대
이사장으로
모셨으나,
유
이사장님도
1년후에는
더
젊은
사람에게
이사장자리를
주어야
한다고
강력히
사의를
표명하시어,
1970년의
정기총회에서
순서가
나에게
넘어와
3대
이사장으로
1973년
9월에
온식구가
미국으로
올
때까지
2년반
동안
이사장
직에
있다가
미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상
60년
연맹
역사중
15년간
연맹일을
했으나,
실제로
힘들면서도
재미있고
보람이
있었던
것은
KARL이
태동되던
1955년
초부터
아마추어무선이
전면
개방
되던
1960년
말까지의
처음
약
6년간이었는데,
이
기간중에
일어난
일들을
내가
아는대로
적어서,
훗날
KARL의
역사를
기록하는데에
도움이
될것을
기원하며,
이글
중에서
내가
쓴
부분은
가능한
한
객관적인
관점에서
사실만
기록하려
전력을
다하였음을
밝히고자
하며,
한동안
대학을
갓나온
나를
자기와
함께
연맹일을
쉽게
할수
있도록
공보부
방송관리국에
취직도
시켜주셨고,
이사장직을
물러난
후에도
계속
연맹일을
귾임
없이
도와주신
초대
이사장
이인관
OM의
공적이
지대하였음을
이자리를
빌려
밝히면서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이상으로
“한국
초기
아마추어무선의
역사”
끝)
===============================
이번에
이 글을 쓰면서, KARL 창립 60주년기념
특집호도 다시 드려다 봤고, K9SUL/ex-HL1SUL OM이 보내준
KARL 창립 30주년 기념호와 그무렵에 발행된
4권의 KARL지를 받아 자세히 읽어 보았는데,
한가지 미처 몰랐든것을 발견하였다.
KARL
초기에 KARL을 함께 만들어서 그 누구보다도 그때 사정이나 그후의
KARL 초기의 일에
밝을 초창기 Old Timer들이, 연맹
초창기는 정혜선/강기동 OM이 연맹을 이끌어
갔고, 이들 초창기 멤버들이 전부 미국으로,
군으로, 지방으로 내려간 후인 1958년
이후 부터는, 조동인이 10여년을 혼자서
연맹을 이끌어 갔다는 사실을 그 누구 보다도 잘 알고 있을텐데, 회고록을 통하여,
인터뷰를 통하여, 좌담회를 통하여 그 당시의 얘기를 하면서,
단 한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가 한결 같이, 초기의 연맹이 누구의 노력으로 돌아
갔는지? HM1AJ 조동인이 연맹을 위하여 어떤 역활을 했는지에 대하여는 단 한마디도
안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HM1AJ가 “연맹 일 하느라고 수고했다”, “고생 했다”는 말들은 아예
기대도 못하겠고, 기껏
한말은 “조동인을 만났다” 정도가 고작이고, “조동인이 연맹 일을 했다”는 사실 조차
거론하지를 않고 있다. OT 들이 이러니,
우리가 미국으로 온지 여러해 후에 아마추어무선을 알게 되었을 DS/6K call 의
후배들이 HM1AJ 가 연맹 일을 했다는 사실 조차 알 리도 없고,
KARL 창립 60주년 기념 특집호에서
DS1OLH 유부원이 HM1AJ 가 연맹일을 전혀 안한것 같이 만들었어도
이상할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 조차 들었는데, 내가 그들의 비위에 거슬릴 무슨 짓을 한건지?
내기억으로는 그런짓 한것 같지는 않은데, 도무지 알수 없는 일이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는
아무리 생각 해 보아도 이해 할수가 없고,
모든
OT 들이 조동인이 일한것은 절대로 거론도 하지말자고 비밀리에 결의
대회라도 했는지?
연맹은 아무의 노력도 없이
저절로 굴러갔다고 생각하고 있거나,
연맹의 1958년
- 1960년의 성과는 모두 초기의 자기들 노력으로 때가 되어
저절로 발생한 결과라고 착각하고 있는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나는 그래도
연맹일에 수고한 사람은 모두 수고했다고 기록을 남겼고,
내가 한 일은 누가 알아 달라고 한것은 아니었고,
단지 학교공부 마저 뒷전으로 연맹일에 전념한것이,순전히
나 개인적으로 아마추어무선에 미쳐서
개인 무선국을 개방하겠다는 신념과,
연맹 일이 재미 있어서
또하나의 취미로
한것일 뿐이지만
, 잘했든 잘못했든
최소한의 예의로라도“조동인이 연맹 일을 했다”는 사실 정도는 표현했어야 하는 것 아닌지????
나도 연맹 초기에 함께 일한 모든 OMs를
만났다는 말 이외는 그들이 연맹일을 했다는 말은 모두 싹 빼버려야 하나? hi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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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온지
6년
반
후인
2001년
4월에
한국을
방문하였고,
이
때에
연맹
사무실을
방문하여
당시
이사장이든 HL1AUG
정국현 OM을
만났다
(HL1AQ, HL1CG, AB6XI from L.A.
및
KARL지
편집
담당
HL1MEZ 동석).











제 3 부 끝 (이상으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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