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초기 아마추어무선의 역사
일제시대 –
1973년
KE6AJ/ex-HM1AJ
조 동 인
제
2 부 (1960 - 1962)
=====================================================================================
HM9A/p
제주도
원정기
(다음은
KARL지
1960년
9/10월
합병호에
계제된것
중
일부를
생략
했음)
HM1AA/HM9A
조요성


처음에는
장소로 제주도,
울릉도,
독도등의 안이
나왔으나, 장비등의
관계로 제주도로 가기로
거이 확정이 났다.
원래 우리의 계획은 ham국
허가 문제가
사실상 힘들 것이라는
전제하에 HL9TA를
이동 시키려 했었으나,
조동인 OM의
대 체신부 외교의
성공으로 또 하나의
이동무선국인 KARL
소속의 HM9A를
얻게 되었다.
7월20일의
방학으로 준비는
시작 되었다. 참가
대원의 문제는 여러
사람의 이름이 오르락
내리락 하였으나, 조동인OM,
임일명 OM,
오남제 OM
그리고 나의 네명으로
결국 결정이 났고. QSO는
안하겠지만 김영걸OM이
부분적으로 참가하여
도움을 주기로 하였다.
최초의
계획으로 갖이고
갈 기계로써, TX엔
20W 짜리, RX로는
BC-342 및
대원간의 연락용으로
PRC-10 네대, ANT로는
30m Long Wire 및
5m Vertical 이외에
500W 정도의
발전기를 갖어
가려 했었다. 이
때쯤 원정 일자도
모두 정해저 있었고,
기계준비
및 장비
준비도 만전을 기하려고
동분서주 하였다. 그런데
조요윤OM에게
FB한 TX,
즉 Elmac의
45W input All Bands Portable TX를
구할수 있었고, RX는
본 연맹 회원인
최명덕OM의
소유물인 Hallicrafters의
SX-96을
최OM의
호의로 갖이고 갈수
있게 되어, 불야
불야 체신부에 기기사용
변경신청서를 8/3에나
제출하게 되었다.
우리의
본래의 예정은 :
8월5일
: 태극호편으로
서울을 출발 하여
오후 5시30분에
목포에 도착
하는 즉시로 목포에서
운용을 개시하고,
6일
오전 : 선편으로
제주도로 출발하여, 배에서
on the air를
할 수
있으면 하고, 제주시에
도착 즉시로 on the
air
7일 :
모슬포에서
운용
8일
: 서귀포에서
운용.
9일 :
성산포에서
운용
10일
: 다시
제주시로 와서 운용
11일
: 선편으로
부산으로 향발. 선상에서
운용이 가능하면 선상
운용.
12일 :
오전중
부산에서 운용. 오후에
통일호 편으로 귀경.
이러한
스케줄을 3일에
각 신문사에 배포
완료하였다.
4일에
모든 기계를 충무로에
있는 전파과학사로 옮기고,
최후의
기계 점검를
했다.
사정상 발전기는
구입하지 못했고,
초단파
송수신기인 PRC-10도
3대
밖에는 모이지 않았다.
최후로
모든 장미를
정비하고 나니 대원들
각자의 침구, 의류.
텐트,
고무침대,
판초,
식기,
식량등에 장비와 더불어
짐짝이 12개가
넘었다.
따라서 ANT는
30m Long Wire만
갖이고 가기로 하고,
일단 짐을 다시
싸서 우리 집으로
옮겨 놓고, 다음날
아침 6시30분까지
오남제OM이
오기로 하였다. 지금까지
불과 수일간에
이 모든 설비를
준비 하고 보니
어설푼 점이 많아,
내일 과연 떠날수
있을런지 의심 스러웠으나,
어떻든
목포까지의 기차표를
사 놓고 보았다.
5일
아침에 오남제OM과
함께 모든 짐을 Taxi에
싣고 잠깐
동안 군 수사기관과
말썽이 있었으나 곧
해결 되어, 서울역으로
가 보니 벌써
조동인 OM과
임일명OM은
와 있었고, Extra로
경기고등학교 1학년생인
김영걸이 와 있었다.
모든 짐을 싣고, 8시40분
기까이에 기차가 떠나는
것을 보고야 이제는
정말 글로나 보고
꿈에나 그려 보고
바다 건너 사람들이나
하는것으로 알았든 것을,
실제로 우리들도 하게
되는가 보다 생각
하니 속으로 부터
안도의 한숨이 각
대원들에게 생기는듯 했다.
우리 ham들만의
전용어를 써 가며
시간 가는줄도 모르게 Rag
Chew에
정신이 팔려,
기차가 어디를 가고
있는지도 몰랐는데 잠간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대전역이란다.
다들 내려서
기념 사진을
몇장 찍고 다시
탔드니 어느 틈에
이리역을 눈 앞에
두고 기차는 달렸다.
꼬맹이
김영걸은 기쁜듯
이리 저리 돌아
다닌다.
이리역이 가까워
옴에 따라
점점 배가 고파진다.
시간도
시간이려니와, 이리공고의
박성근OM이
도시락을 싸들고 마중
나왔으리라는 기달림 때문이리라.
이리역에서
박성근OM과
또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니 시계는 어느듯 5시20분을
가리키고 기차는 목포역에
도착 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갈곳은
단지 KBS의
HLKN 목포방송국
뿐이다. 목포방송국에
드리 닥치니 아담한
방송국엔 50m의
Vertical Antenna가
있음을 감지케
한다.
미리 KBS의
최고 기술직에
계시는 이인관 이사장님의
지시로 우리를 기다리든
기술과 직원의 안내로
국내로 들어가니, 시간이
넘어서인지 국장, 과장
모두 안계신데, HLKN국장님은
당시 병환이신데
임일명OM을
잘 아는 사이라
조동인 OM과
함께 국장댁으로 가서
인사를 하고 우리의
취지를 설명드렸다.
이로서
우리는 콘셋트를
빌릴수 있었고, 텐트는
청사 바로 위에
첬다.
내가 28m Tower에
올라가 30m Long Wire를
즉각 설치하고,
전원을
끌어 오고, TX, RX들을
풀어 준비를
완료하니 오후 8시가
되었다.
엄숙한 마음으로
아까 이리를
지나 올 때에
박OM의
HL2AP와
schedule관계로 RX를
뒤지니 감도 00.
14MHz의
상테를 틀어
보니 Good.
조동인OM에
의해 8시10분에
CQ를
내니까 곧 대만에서 BV1USE가
응답 해
온다. HM9A를
소개한 뒤에, 내가
마이크를 잡아 BV1USE와의
교신을 끝내니 40분이
된다. Sign off하니
즉각 HM9A를
불러 오는 강력한 Sig에
귀를 기울이니
그는 다름 아닌 Top DXer
PY2CK였다.
다음은
임일명 OM이
마이크를 잡고, 다음은
오남제OM이
CW를
치니 어느듯
자정이 가까워지며 HLKN의
기술과장이 들어
오신다.
다시 HL9TA와
HL2AP와의
schedule 관계로
7MHz로
내려와 보니 HL2AP의
신호가 들려 한참
불러 봤으나 응답이
없다.
이에 우리는
전파가 발사
되지도 않는것 아니냐고
이를 측정 하려고
해도 측정기가 없고……
전전긍긍하는데
오남제OM이
큰 마음먹고 TX ANT를
부쩍 잡으니
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저 나왔다. 전파는
틀림 없이 발사
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날은 우리의 Hope인
오남제OM이
CW로
교신 한
결과, 총
31국에 17
countries의
기록을 갖고 왔다.
의외의 큰 수확이었다.
금년도의
태양흑점계수는 100을
오르 락
내리락할 지경이니 년전의 150에
비하면 형편
없다는 증거다.서울을
떠나기 전에 SWLing을
해보니 Condx이
형편 없음은 실증이
되었든 터라 큰
기대는 걸지 못했을
망정 실패나 하지
말았으면 하는 정도
였는데, 17 countries는
정확히 큰 수확이었다.
6일의
먼 동이 밝아
옴에 기상을 하니,
그 때가 아침 6시경인데도
오남제OM의
QSO는
계속되고 있었다.
전 날의 기차여행에서
지친 여독을 푼
자가 아무도 없었지만,
오남제OM의
활약이 너무 심해
그에게 QRT를
부탁했다.
지난 밤의
수면시간은 대원
평균 3-4시간
정도이리라.
어떻든 아침을
먹고 각기
각처로 목포 구경을
나서 1시경
집합을 했다. 목포는
전형적인 항구 도시로서,
순박한
사람이 이곳에
왔다간 과히 좋은
인상은 갖지 못할것
같았다.
제주도의
선편은 오후 6시에
있단다. 본시
듣기로는 오전에 있다고
하여 계획도 그렇게
짰었으나 둘째 날
부터 계획이 틀려지는
셈이다. 1시에
모두 짐을 싸니 HLKN에서
우리 HM9A를
위하여 우리 5인에게
점심 대접을 한다.
송구 스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지만
우리의 빛 날
미래의 목적을 위하여
이정도의 신세는 지기로
했다. hi hi.
목포와의,
목포의
아름다운 뉴달산과의, 목포방송국
HLKN 직원들과의
석별의 정을
못내 그리워 하며 350톤급의
정기 운항
여객선 “경주호”는
일로 남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리의
거실은 선박회사의
편의로 좀처럼 빌릴수
없는 가족실을 우리의
전용 거실로 했다.
이 배에선 on air를
하자니 AC가
없고, DC 24V로
운행을 하니 이곳에서의
기대는 사라졌다.
파도는 예상외로
잔잔하여, 10시간
정도의 여행은 자못
즐거웠다.
구태여 배에서늬
on air를
주장하자면, PRC-10에
의한 선창괴 선미
사이의 50Mhz QSO일것이다.

7일
: 오전 3시40분.
드디어
경주호는 고동을 울리며
제주항에 입항하였다. 즉시
하선하여 그 근처의
하숙집에 들어가 앉으니
모두들 피로의 기색이
역력하고 다들 쓸어진다.
하침 9시경
탐라국에서 이색적인 아침을
마치고 오늘의 계획을
세웠다.
임일명OM과
오남제OM은
제주도 유일의 회원인
김희주OM을
찾아 나섰다. 우리는
제주시 거리를 잘
모르니 그의 안내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11시경,
조동인 OM과
김희주OM
그리고 나,
셋은
거처할 장소로서 오현중학교를
찾았으나 모든 시설이
부적당함을 알고, 다시
셋은 HLKS
제주방송국을 찾아갔다.
찾아간즉,
방송국장님은 출장 중이었고,
또 그날이 일요일이었든
관계로 오직 기술과원
권중훈씨가 반겨 맞아
준다.
우리의 목적과
이를 수행
하기 위한 제반
사실을 설명 하자,
방송국 측에서는 모든
편의 제공을 약속했다.
빨리 우리의 짐을
방송국으로 갖어 오라
하신다.
잠시 후,
모든
장비와 대원이 방송국에
도착 하자 방송과장님도
와 계시고, 방송국
측에서는 우리를 환영하는
의미로서 제주시 최대의
음식점에서 점심을 사주셨다.
황송하고
송구스러운 마음
어찌 할바를 몰랐으나
참았다.
점심후 곧
제주시를 구경하고
방송국에 돌아가니 우리를
위해 콘셋트 하나도
빌려 주었고, 저녁도
준비 되어 있음을
알았다.
어디가서 또
이런 대우를
받으리오.
Ant는
지상고 38m의
타워가 있음을 알았고,
곧 임일명OM의
노력으로 FB한
Long Wire가
깨끗이 처졌다.
이곳에서의 QSO는
오후 8시5분
오남제OM에
의하여 W3GHD와로
시작 되었다. 지상고
38m에 Noise가
zero인
이곳에다 FB한
RX인 SX-96을
연결해 놓고 보니
안들리던 것이 막
들린다. 45W의
TX도
정말 K6JD가
얘기 하듯이 FB하게
동작을 한다. 500W의
TX로도
제주도 전체가 cover가
안되서 걱정하는 HLKS의
기술과 직원이
단지 30 x 25 x 25cm의
작은 45W Input (Output은
기껏해야 30W?)
로 세계
각국과 전화
이상으로 QSO가
되는 것을 보고
놀라도 당연 하리라.
8일
: 2시
까진 14MHz band가
좋았으나 시간이
감에 따라 21MHz가
좋아지며 Europe Stn들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All band는
HM9A의 Cheju Island
소식으로 가득 차고
만다.
생애 최초로
맞는 ham의
희열이 가슴에 벅차니,
이 기쁨을 대원들은
오직 “야!!”라는
감탄사로 표시할
뿐이었다.
우런 중에도
우리 가슴
한구석을 긁는것이 있으니
그것은 아직도 서울과의
교신을 못했다는 점이었다.
서울과
제주는 skip zone에
있음이 화실한
것이었다.
8일이
밝는다.
어제 밤
부터의 QSO는
오남제OM의
활약이 아침 8시가
넘기 까지 계속
되었다.
확실히 올빼미
생활이다. 이제
부터는 잠을 자야
한다.
그러나 모두
기운을 내어,
하침을 방송국 식당에서
먹고 나니 조름이
오는 모양이었다. 낮
12시쯤
일어나 RX를
동작 시켜 보니 All band
CONDX이
형편 없다.
이때 쯤엔 서울과의 QSO를
생각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암만해도 7MHz가
발사 되지
않는것 같아 (우리가
갖이고 간 TX는
Elmac Model A-54로
원래 7MHz가
없어 우리가 임시로 final
coil을 7MHz가
되도록 만들어 갖이고
갔음), TX를
뜯어 방송국에서 coil을
좀 얻어
더 부가시켜 갖이고
동작시켜, Neon Lamp를
대보니 멋지게 들어와
안심하고 7MHz JA국이나
QSO하자고
자칭 7MHz전용이라는
임일명OM이
열심히 CQ를
냈으나 응답은 zero. 20W
짜리 Lamp가
들어올 정도면 틀림
없을텐데 그야말로 이상했다. Dip
Meter도
없어 결국
임OM은
서러워 했지만 7MHz에서의
QSO는
포기 하기로
하였다. (서울에
와서 알았지만 이것은 14MHz에
동조되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원래의
계획은 금일
오전중으로 모슬포로 떠나
그곳에서 on air할
예정이었으나,
방송국 사람들의
권유와 그
곳에서는 장소 찾기도
힘들것이고 전원문제도 곤란하다
하여 결국 모슬포
및 성산포에서의 on air는
포기하기로 하고,
제주시와
서귀포에서 각각
이틀 씩 on air하기로
정했다.
CONDX이
나쁜 오후는 바닷가에
가서 해수욕으로 지내고
저녁에 다시 와서 6시부터
on air를
시작했다.
한 편으로는
연락차 서을을
찾으면서 한편으로는 DX를
찾으며 2중성
QSO를
하는 도중에
저녁 7시30분에
QSO한 BV1US가
8시20분에
다시 나와 HL9TA가
HM9A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QSP했다.
즉시 Dial을
돌렸으나 서울
하고는 skip zone이라
QSO가
안되어 결국 BV1US의
QSP로
가까스로 우리의 의사를 HL9TA에
전할수 있었다.
오늘도 QSO를
하다 보니 자정이
넘어 9일이
왔다. QSO는
계속 되어 아침 6시에
임OM의
LU9DAH를
끝으로 제주시에서의 QSO는
끝을 맺었다.
결과는 55국,
21 Countries.
9일
아침 조반을 방송국
식당에서 먹고 서귀포로
떠날 준비를 했다.
방송국의 호의로 서귀포의
전기 사정이 나쁘다는
이유로 1.5KW
짜리 발전기를
빌릴수 있었으며,
기술과장님은
직접 서귀포행
뻐스를 방송국 까지
끌어와 우리에게 대단히
펀리하게 해주었다. 3일후에
다시 만나기로 HLKS직원들과
약속하고 10시에
출발하여 일로 서귀포로
향했다.
우리가 탄
것이 서쪽으로
가는 서행이라 서귀포를
지나간단다.
지나 가면서
한라산을 보니
참으로 민밑한게 경사각 20도도
안되어 전파복사에
아무런 지장을 줄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개미봉의 험준한 바위만이
눈에 거슬렸다. 석다,
여다,
풍다의 제주도를
한눈으로 구경하며
꿈과 같이 아련한
천지연.
우뚝 솟은
절벽은 바다를
위용하는듯,
노래 가락의
소읍 서귀포에
도착한것은 오후 4시가
가까워서였다.

HLKS
기술과장의 말씀대로
우선 HLKS 특파원을
만나 이곳의 이야기를
대체로 들었다. 우선
장소의 사용처로 조OM과
내가 서귀포국민학교를
찾아가 서 그곳
교장 선생님에게 우리의
목적 및 우리가
하고자 하는것을 말씀
드리고,
교실 사용
허가를 원한즉
거절이었다.
이유는 이곳으로
온 무전여행
학생들의 횡포가 어찌나
심했든지 일체의 교실
사용은 금지 하는것
같았으나,
간곡한 말로서
겨우 허가를
얻었다.
우리가 원정
나와서 처음
당하는 시련이라 생각
됐다.
그러나 밖을
나와 보니
서귀포 사람들의 우리에
대한 태도가 어찌나
쌀쌀하든지 인식을 새로
해야할 지경이었다. 년전에
이곳을 와 봤을
대와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사실로
냉정히 생각해 볼
때에 무전여행 학생들이
얼마나 사납게 행동을
했으면 순박한 이곳
사람들의 인심을 이렇게도
무참히 짓 밟아
놓았는지? 하는
느낌이 가슴 언저리를
차겁게 하였다.
소마차로
모든 짐을
교실 한구석에다 옮겨
놓고,
높이 20m
정도의 ANT를
가설했다. RX, TX의
준비도 마치고 학교의
전원저압을 측정하니 70V. 따라서
변압기로 110V로
올려 TX를
동작 시키니 70V정도로
떨어진다.
이대로 100V로
변압기로 올려 TX를
off하니 RX에
걸리는 전압이 130V가
된다. 전원
치고는 최하에 속하므로
이런 상태로는 도저히 on
air를
할수가 없어
발전기를 돌리니 그
때 시간이 6시20분이고,
오남제OM에
의해 ZL1LM과의
QSO성립으로 20국에
9 countries인
서귀포에서의 QSO가
시작 됬다.
제주에
비해 ANT도
볼품 없고 Power도
형편 없어 QSO에
많은 곤란을 받았다.
이럴줄
알았으면, 제주에
그냥 머물러 있을거라고
회한의 소리가 대원들
사이에서 오르락 내리락
한것도 당연 하리라.
10일이
되었다,
다들 오래만에
수면 시간을
충분히 취했고 조반을
마쳤다.이제
부터의 밥은 임일명 OM의
친구가 이곳에
있어서 거기서 해
왔다.
임OM은
취사부장으로 임명
되어 서투른 솜씨나마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대원들의
건강을 위해서??? RX를
틀어 보나 RS00.
이에 계획을 변경
하여서귀포 구경을 하기로
하고,
천지연 폭포를
시작으로 웅장
할 때에는 비교가
안되는 정방폭포를 두루
관광 한 후에
해수욕으로 오늘 하루를
즐겼다.
저녁
9시부터 Rig에
붙어 앉아 on air를
하는데, TX만
on하면 main
power는
전압이 뚝뚝 떨어저,
장기를 두고 있든
선생들이 야단이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발전기를 돌렸으나, 어제
많이 동작 시켰든
관계로 휘발유가 얼마
없다.
제주도는 당시
휘발유의 기근으로
어디서 구할수도 없었다.
오늘
특기할 점은
최초로 본거지 사람과
연락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HL9TA의 OP는
이여은OM이었는데,
최초로 JA6AV의
중계로 의사소통을 할수
있었으나 나중에는 직접
통신이 가능해 졌다. HL9TA와의
교신은 30분
이상을 소비했다. 서로들
기쁨에 넘치는 30분간이었다.
여기서
우리들의 확실한
일정을 연락 하여
두었다.
즉 14일에
서울에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11일
아침이 밝아 온다.
어제 저녁에, 이곳에서
오늘 다시 HM9A를
운용 할것인가를 의론할
때에 전원 일치의
의견은 오늘 까지의
서귀포 운용은 포기
하기로 하였다. 예상
외로 성과가 부진
했기 때문이리라. 따라서
모두 짐을 싸고
일찍암치 제주행 뻐스에
실어 두었다.
아침
9시에
일로 제주를 향해
뻐스는 떠났다. 이번은
동행이라 성산포를 지나가게
되는 것이었다초연한 제주도를
일주하여 제주시에 도착
한것은 오후 2시경이었고
오는 즉시로 배편을
알아 보니 예상
외로 오늘 5시에
“이리호”가
부산으로 출항한단다. 본시
우리 계획은 “이리호”가
그날 떠나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오늘은 제주에서 on air하고
내일 부산으로
갈 예정이었다. 우선
HLKS방송국에
우리의 도착을
알려주고,
일단 짐을
부두로 싣고
갔다.
김희주OM의
점심 대접을
받고 나니 4시가
넘었고,
모든 승선
준비를 끝내니 4시30분이
되었고, HLKS의
직원 여러분이 우리를
환송 하러 부두로
나오셨다. 5시에
닷세나마 정든 탐나를
뒤로 하고 여러분의
환송을 받으며 항구를
떠났다.
부산행인 것이다.
이배에는
조동인, 임일명,
조요성의
셋만 타고,
오남제와 김영걸은 6시
목포행을 타기로 했음으로
이곳서 우리는 대원도
둘로 나뉘었다

12일
눈을 떠보니 지평선이
오르락 내리락 하고
선창에 부디치는 파도
소리만이 들린다. 해맞이를
배에서 하고 오륙도가
보이고 왼손쪽으로 부산시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8시에
부산 부두에
도착하니 임일명OM의
친구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우선 짐을 전부
그 앞의 “한국
스레트 부산 출장소’ (임OM네
회사)로
옮겨다 놓고, 그곳
사원의 호의로 오랫만에
구미 댕기는 아침을
먹었다.
오늘
우리의 숙소는
조동인OM의
친척집인 초량동 수원지
부근으로 정했고, 모든
짐을 다시 그리로
옮겼다. Rig를
설치하고 ANT는
궁한 김에 전주에서
부터 끌어 왔는데
태반이 양철 채앙
밑을 통과 한지라
지상고 6m에
길이는 20m가
된다 하드라도 전파가
복사 될런지 의문스러운 ANT를
설치했다. 아무리
궁리해도 이것이 최적의 ANT인데는
할수가 없었다.
오후에는
시내 구경을
하고 저녁에 들어가 RX를
틀어보니 CONDX은
형편 없다
겨우 임일명 OM의
KG6AIG와
조동인OM의
KR6AF가
고작이었다. ANT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13일에
일찍 일어나 짐을
쌌다.
오늘 우리의
계획은 우리의
회원이 많은 대구에서
하루를 머물면서 on air를
하기로 했었다.
본시 이 계획은
서울을 떠날 때엔
생각 지도 않아든
것이었다.
도중에 이왕이면
Demonstration을
여러 회원 앞에서
해 보자는 의도가
있었다.
오전 10시에
한국스레트 직원의
환송을 받으며 제8급행열차로
부산을 떠나
학술 도시 대구에
도착한 것이 12시가
약간 넘어서였다. 어제
부산서 전보를 친
일도 있고하여 우리
회원인 이동호OM을
찾아 남선전기주식회사로 가서
그의 집을 찾아
갔으나 그는 없었다.
우리
생각으로는 그의
성품으로 보아 역전에
나왔을 텐데 역에도
안나왔고 집에도 없어
의아스럽게 생각했으나, 우선
우리 회원들을 만나기
위해 회원 명부를
들고 차저다녔으나 대구길이란
이상 하여 몇십집이
한번지 수라서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리 저리 약 3시간을
집찾는데 조동인OM,
임일명OM
그리고 나까지
소비하고서 찾은
회원은 단 하나였다.
그도 없어 그의
형에게 우리의 신분을
밝히고 나중에 다른
회원과 함게 우리의
거처지로 오라고 연락
해 놓고 이동호OM집으로
갔드니, 이OM이
있었다. 이때에
알게 된것은 우편국
사람의 실수로 13일
오전 12시
도착이 14일
오전 12시로
되어 전보가 배달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곧
Rig를
차리고 Zig Zag형
NAT를
가설 했다. ANT
칠 장소가 마땅치
않아 ANT는
완전히 꾸불 꾸불 Zig Zag형이
된것이다. RX Dial을
돌려 봤으나 CONDX이
형편 없다.아마도
ANT가
형편 없나 보다.
이동호OM의
호의로 Beer와
중국요리로 저녁을 마치니
시원 한 저녁
바람은 우리를 밖으로
유인하여 어쩔수 없이
대구 시내를 돌아
다녔다.
어찌된 일인지
우리의 기대에
어긋나게 한사람의 회원도
나타나질 않았다. 실망은
하였지만 하는수 없이
우리 넷만의 Rag chew를
갖인후에 잠자리에
들었다.
14일.
오늘은
우리 Expedition의
종말을 고하는
날이다.
이동호 OM은
우리의 FB한
QSO를
기대 했는데
실망 해 버리고
말았다.
단지 내가
JA8AQ와 QSO한것으로
모든 Operationd은
끝나고 말았다.
다시 12개의
보퉁이를 싸들고 대구역으로
가서 서울행 8열차를
기다렸다.
이것으로 우리의
Expedition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서운하기
그지 없다. 이동호OM의
환송을 받으며
서울을 향했다. 그간
8월5일에
조동인OM으로
시작하여, 8월
14에
나로 끝난 QSO는
21MHz에서 41국,
14MHz에서 67국,
도합 108국으로
28countires와
교신을 했다.

==============================================
이렇게
하여
한국의
아마추어무선이
1960년9월3일을
기하여
전면
개방되면서,
한국
아마추어들의
본격적인
활약이
개시되었고,
세계적으로
HM Call은
많은
인기를
끌게
되었다.
(HM의
Call만으로도
최소한
10db의
Gain은
있다고
했었다.
hi) 특히
HM call중에서도
DX QSO를
하는
국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인기는
대단하였고,
초기에
Dxer로
활약한
OM 들로는
HM1AB, HM1AD, HM1AJ, HM1AP, HM4AQ (전북
이리시),
HM1BB가
대표적이었고,
HM1AD, HM1AP는
주로
CW로,
HM1AB, HM4AQ, HM1BB는
Phone/CW 양쪽으로
active하였으며,
CW에
익숙지
못한
나는
Phone Only Station으로
DX와
함께
JA service를
많이
했었다.










한편
HM9A/p를
통한
대국민
홍보활동도
힘을
들여,
1960년
11월에는
경복궁에서
열렸던
과학전람회에
HM9A/p가
이동
전시
운용됨으로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아마추어무선이
일반
국민들
앞에
선을
보였고,
과학전람회를
보러온
수많은
관람객들로부터
대단한
인기를
끌었고,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
OP들이
마음대로
외국과
교신하며
잡담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놀라움과
경탄을
금치
못하였었다.
이전시회에는
HM1AB, HM1AC, HM1AF, HM1AJ, HM1AK, HM1AP, HM1AY, HM1BB, HM8CQ등
제
OM들이
수시로
교대하며
수고를
아끼지
않았었다.




HM9A/p는
그후에도
아마추어무선의
홍보활동에
큰
역활을
하였고,
1962년
2월에는
HM1AA 조요성(당시
서울공대
4학년),
HM1AS 이광수(당시
한양공대
2학년),
HM1BK 박종웅(당시
휘문고교
2학년),
HM1AU 정정덕(당시
서울
사대
2학년)군
그리고
HM1AW 전희국이
해군의
지원을
받아
독도로
이동운용을
하여,
JA들이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는
독도가
우리
땅임을
과시하여
매스콤에
크게
보도되었었다.
제 2 부 끝
/9/18
|